김대중 총재의 퇴진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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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대중 평민당총재가 결국 퇴진을 거부함으로써 총선 전 야당통합은 무망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2선 후퇴가 야당통합의 가장 큰 조건인줄 번연히 알면서도 후퇴는커녕 한 걸음 더 나아가 두 김 공동대표 제를 다시 제의하고, 이것이 으례 거부될 것을 전제로 한 듯이 그렇다면 연합공천을 하자고 제의했다.
지난번 민주당과 여론의 거센 비판으로 스스로 철회했던 공동대표 제를 다시 제의했으니 이는 통합의사가 없다는 명백한 회답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통합 후 퇴진」이라는 자기 말을 번복한 것이며, 그의 거듭된 번복 사례에 또 한 건을 추가한 셈이다.
김총재가 소선거구제를 지지하면서도 통합을 않겠다는 것은 어떤 명분과 논거가 있는지 측량하기 어렵다. 우리는 소선거구제가 채택된 이상 야당의 살길은 통합뿐이라고 보는데 김총재는 야당의 분열이 야당에 유리하다고 보는 것인가.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에서 서너 명의 야당후보가 난립하면 야당지지표의 분산으로 여당후보의 당선이 쉬워진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런데도 굳이 통합을 외면하고 분열 쪽을 택한 것은 결국 야당보다는 자기의 당직고수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혹시 호남의 지역감정을 믿고 대여의석경쟁보다는 야권 내 제1야당 경쟁으로 대통령선거의 3위 득표를 설욕하고 오두막야당이나마 당권과 공천 권을 움켜잡자는 속셈이라면 지금까지 무수한 고난을 겪으면서 민주화투쟁에 혁혁한 기여를 해온 지도자로서의 품격일수가 없다. 유권자들도 이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전국적인 1여 다야 현상으로 야세 위축↓ 거대여당↓ 정국불안이 올 것이라는 일반의 우려에 대해 김총재 측은 어떤 생각을 갖고있는지 밝혀주었으면 좋겠다. 분열로도 승산이 있다면 그 내용이 궁금하기 싹이 없다.
김총재가 회견에서 말 한대로 두 김씨가 아직 현실적인 영향력을 갖고있고 김영삼씨가 물러난 뒤 민주당이 흔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무한정한사당적 당 지배를 합리화하고 대통령선거패배의 책임을 상상할 수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2선 후퇴를 함으로써 어려운 결단을 내린 데서 얻게되는 도덕적 힘과 여론의 순풍으로 영향력은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리고 실제 선거에 나설 민주·평민당의 대부분 인사들이 두 김씨가 손을 맞잡고 전국을 돌며 선거지원을 해주기를 갈망하고 있지 않은가. 김총재는 통합이 안될 경우 양당연합공천을 제의했지만 이 역시 현실성은 극히 적다고 할 밖에 없다. 양당이 서로 열세지역인 영·호남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공천자가 대부분 내정된 상태이고 경치는 지구의 조정이란 야당생리로 보아 지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야당은 결국 4개, 혹은 5개로 난립해 총선에 임하게될 형국이다. 통합에 적극성을 보였던 한겨레당도 통합무산으로 독자코스를 걸을게 분명하다. 김총재의 태도를 보거나, 총재를「어버이」로 비유한 발언이 나오고 2선 후퇴를「결사」반대하며 농성을 벌이는가 하면 삭발한 여 당원까지 나오는 평민당의 분위기로 보아 통합을 위한 극적인 마지막 반전의 기회도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런 야권의 정치양태는 선거에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으며 선거 후 야권의 전면 재편, 재정립과 세대교체를 불가피하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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