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강압에 리비아 '두 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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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리비아가 프랑스의 고집에 손을 들었다. 리비아 정부는 1989년 나이지리아 상공에서 폭발, 1백70명이 사망한 UTA-에어프랑스의 DC-10 항공기의 탑승객 유족들에 대해 추가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고 지난달 31일 밝혔다.

사실 이 사건은 협상이 이미 마무리된 것이었다. 리비아는 99년 폭발사고에 대한 테러 책임을 인정, 유족들에게 3천5백만달러(약 4백20억원)의 보상금을 주기로 합의했었다.

그러나 최근 리비아가 88년 스코틀랜드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한 팬암항공의 보잉747 항공기 탑승객 2백70명의 유가족들에게 보상금을 무려 27억달러나 지급하기로 합의하자 프랑스의 심사가 뒤틀렸다.

프랑스와 콩고 국적이 대부분인 DC-10 희생자 1명당 보상금이 20만달러에 불과한 반면 미.영국인 희생자가 많은 보잉의 경우 1인당 보상금이 1천만달러로 차이가 나도 너무 났기 때문이다.

프랑스 유족들은 지난달 21일 추가 보상 협상을 위해 리비아를 방문했으나 리비아의 거부로 소득 없이 돌아와야 했다. 이에 프랑스 정부가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로커비 사건이 마무리되면서 미.영이 리비아에 대한 유엔경제제재를 해제하려 했으나 프랑스는 추가 보상이 없으면 안보리 해제 결의안에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윽박질렀다.

미국이 프랑스의 태도를 비난하고 영국이 중재에 나서봤지만 프랑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자크 시라크 대통령마저 나서 전화를 걸자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대통령은 요구를 수용했다.

리비아의 결정에 대해 아랍권은 '어제의 반(反)서방 전사가 오늘엔 굴욕적으로 화해 구걸외교를 하고 있다'라는 식의 반응이다.

영국에서 발행되는 아랍어 신문 알쿠드스 알아라비는 1일 "이라크 전쟁 이후 무너지는 아랍의 자존심 붕괴현상이 리비아에서도 예외없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했다.

파리.카이로=이훈범.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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