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반응] 美, 믿었던 중국에 뒤통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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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 왕이(王毅)부부장이 1일 베이징(北京) 6자회담과 관련, 미국의 대북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섬으로써 미국은 적지 않은 딜레마를 안게 됐다.

중국 측의 반응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제외한 5개 국가가 일종의 '연대'를 형성하게 됐다며 고무됐던 미국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이다.

당초 미국은 이번 회담에서 중국과 북한의 사이가 벌어지게 됐고, 그것을 무엇보다 큰 성과라고 판단했었다. 회담을 성공시켜 외교적 입지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노력을 북한이 외면했기 때문에 앞으로 중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미국과 공동보조를 맞출 것이라고 본 것이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그동안 핵 문제에 대해 미국과 중국을 상대로 더블 플레이를 해왔고 그 바람에 미.중 간의 갈등도 존재했다"면서 "하지만 이번 회담을 통해 참가국들은 북한의 의도와 주장을 다 함께 확인할 수 있게 됐다"고 성과를 강조했다.

회담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북한의 거듭된 공개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회담은 유익했고 향후 계속될 것이라는 합의가 있었다"(국무부 낸시 벡 대변인)면서 긍정적인 평가로 일관한 것은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이와 함께 미국은 한편으로는 북한에 대한 압박정책도 계속 이어갈 계획이었다. 북한이 "대북 압살정책"이라면서 강력히 비난해온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회의를 예정대로 이달 초에 열고, 중순에는 서태평양에서 PSI 차단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 등은 6자회담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기본인식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딕 루거(공화당)상원 외교위원장도 지난달 31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 내 강경 목소리는 전혀 수그러들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중국이 공동 보조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미국의 대북정책은 상당부분 차질을 빚게 되는 게 사실이다.

북핵사태 해결에 있어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이미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협조가 없으면 유엔에서의 대북 제재는 사실상 어렵다.

이 때문에 미국은 일단 중국의 비난발언 배경을 파악하면서 중국을 미국 쪽으로 끌어들이려고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 내 보수파들 가운데서는 "더 이상 중국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해법은 더욱 더 어렵게 꼬여가는 형국이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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