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詩)가 있는 아침 ] - '보리수가 갑자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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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광규(1941~ ) '보리수가 갑자기' 전문

바람 한 점 없이
무더운 한낮
대웅전 앞뜰에서 삼백년을 살아온 나무
엄청나게 큰 보리수가 갑자기
움찔한다
까치 한마리가 날아들어
어디를 건드린 듯
하기야 급소가 없다면
벗어나야 할 삶도 없겠지



까치 한마리가 삼백년짜리 큰 보리수에 날아들었더니 나무가 움찔하더란다. 그런 것을 시간 맞추어 확실히 볼 수 있는 눈은 시인의 눈밖에 더 있으랴. 안과 의사보다, 대통령보다 더 좋은 눈을 가진 훌륭한 시인의 눈이 부럽다. 약점이 없는 척하는 인간은 어디서나 인간의 정을 느낄 수가 없다.

마종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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