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의 방어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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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변호인이 법정에서 행한 변론도 가변성이 있는가를 두고 비상한 관심을 모아왔던 재판의 결과가 나왔다. 물론 무죄로 선고되었다. 이 당연한 판결이 나오기까지 장장 13년8개월의 긴 세월이 걸렸다.
변호인의 피고인을 위한 정당한 직무행위를 문제상아 담당 변호인을 구속한 것도 사법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지만 그 행위가 정당했다는 판결이 14년만에 나왔다는 것도 진기한 일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구시대 정치상황이 얼마나 어둡고, 암울했으며 공권력행사와 사법운영이 어떠했던 가를 익히 알 수 있다.
유신직후 계엄령하의 살벌했던 당시 강신옥 변호사의 법정발언은 웬만한 용기 없이는 없는 말이었지만 너무나 당연한 말을 했을 따름이다. 무고한 사람을 잡아다 재판하는 게 「사법살인」이고, 「법이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게 아니라면 도대체 대치되는 말과 논리는 무엇인지 지금 생각해도 궁금하다.
악정도 저항 없는 있는 저항권이 인정되는 세상에 악법에 저항할 수도, 투쟁할 수도 있다는 변호인의 법정발언을 법정모욕죄로 다스리겠다는 것부터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사사로운 좌석이나 대중 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또 모르겠다. 또 변호인이 법정에서 소란을 피우고 법정질서를 어지럽혔다면 별 문제다. 변호인의 자격으로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의 하나로 행한 정당한 직무행위를 범죄행위로 몬 것은 공권력의 이만저만한 횡포가 아니었다.
형법 제20조는 「법령에 의한 행위나 업무로 인한 행위는 정당한 행위로서 처벌할 수 없다」고 명백히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령에 의하거나 업무로 인한 행위가 「정당방위」나 「긴급피난」과 같은 개념으로 위법성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피고인의 방어권 행사로서 변호인의 직무행위가 설혹 재판장이나 당국의 비위에 거슬린다 하더라도 위법성이 없다는 걸 의미한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헌법이 보장하는 신체의 자유에 바탕하고 있다. 이를테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와 적법한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방을 권리를 구체화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같은 국민적 기본권을 변호인이 아닌 국가기관이 먼저 수호하고 보장해야 할 1차적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한 국가기관이 방어권을 지켜주기는 커녕 오히려 변호인의변론을 트집 삼아 단죄를 하려 했던 건 적반하장이었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법정모욕죄는 법정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실치 해 둔 죄목이다. 법정의 존엄은 법정이 무덤처럼 조용하게 침묵만 지키고 변호인이 고분고분 듣기 좋은 말만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다. 진정한 법정의 존엄은 법정이 진실에 충실하고 정의가 발현될 때 더 존엄해지고 장중할 수 있으며 권위가 높아진다.
그렇지 않은 법정은 외피적이고 형식적이며 허상뿐인 존엄만 있을 뿐 실질적 존엄은 생겨 날 수 없다. 사법부의 권위와 존엄은 법정의 진정한 존엄에서 생기며 그런 법정은 판결문에서 밝혔듯이 변호사의 충분하고도 자유로운 공격, 방어권이 보강되는 법정임을 깊이 되새겨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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