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시장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 같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한나라당이 2004년 8월 국회에서 연 수도 이전 문제 국민대토론회 때 나란히 참석했던 박근혜 대표(왼쪽)와 이명박 시장. [중앙포토]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와 이명박 서울시장 사이에 냉기류가 흐르고 있다. 공식 자리에서는 서로 치켜세웠던 두 사람이다.

박 대표는 6일 염창동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이 잘 될 때는 깎아내리려 하고 당이 어려움에 빠지면 뒷짐 지고 오히려 부채질하는 사람들이 한나라당에 있다"고 말을 꺼냈다. 그러곤 "당이 어려울 때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하고 공동체 의식을 갖는 것은 고사하고 자신은 마치 당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인 것처럼 당을 희생 삼아 개인 플레이만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거침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이때까지만 해도 박 대표 발언은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박 대표가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심한 추위 속에서 한나라당 의원들과 당원들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사학법 투쟁을 벌였다. 그런 사학법 투쟁까지 폄하하는가"라고 언급하면서 이 시장을 겨냥한 공격으로 이해됐다.

이 시장은 한나라당 출입 여기자들과의 3일 만찬에서 "이재오 원내대표가 되고 나서 야당성을 회복했다"며 "이 대표가 사학법 재개정안을 내지 않았으면 지금까지 계속 밖으로만 돌며 투쟁을 계속했을 텐데. 생각해 봐라. 끔찍하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됐다. 이 시장은 이 자리에서 "당이 긴장이 풀려 있다. 해변에 놀러 온 사람들 같다" "지금 정부와 여당이 워낙 못해 한나라당이 이나마 하는 것"이라는 발언도 내놨다.

회의 직후 박 대표는 '발언이 이 시장과 연관된 것이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당을 위해 모두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지난 1월 사학법 투쟁을 비판한 원희룡 최고위원에게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공개 경고했었다. 그러나 이 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에 대해서는 싫은 소리를 자제해 왔다. 따라서 이날 발언은 이례적이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박 대표가 이번을 계기로 더 이상 대선 경쟁자들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출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또 다른 측근은 "입장을 바꿔 박 대표가 '청계천 공사쯤 예산과 인력만 있으면 누군들 못하겠느냐'고 말하면 이 시장은 침묵하고 참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시장 측은 냉기류가 확산되지 않길 바라는 분위기다. 이 시장 측 인사는 "박 대표의 발언을 보고드렸으나 별말씀이 없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측근은 "모두가 당을 걱정해서 한 얘기이고, 박 대표를 비난하려는 뜻이 아니었다. 언론의 보도만 보고 오해한 것 같다"고 했다.

강주안.남궁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