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잊었나, 감염병 컨트롤타워 불러놓고 호통만 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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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역학조사팀이 가장 먼저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데 경찰이 통제해요? 그게 시스템이에요?” “질병관리본부와 보건복지부의 대응은 빵점입니다.”

국회 보건복지위, 이대목동병원 현안보고 회의 #메르스 후 질병관리본부장을 컨타워로 격상해놓고 #총괄지휘 전념할 정은경 본부장 불러 호통만 쳐 #

지난 19일 오후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보건당국을 향한 여야 의원들의 질타가 쏟아졌다. 최근 발생한 이화여대목동병원 미숙아 사망 사건 관련 복지위 소속 의원들이 관계자들을 불러 보고를 받고 질의를 하는 자리였다.

참석한 16명의 의원 대다수는 정부의 미흡한 대응과 부실한 관리 감독을 일방적으로 꾸짖는 데 시간을 할애했다. 이 같은 질책에 관리를 철저히 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식으로 응하는 당국자의 모습은 여느 때와 같았다.
눈에 띄는 질의는 없었고 답변 속에 새로운 내용은 나오지 않았다. 이대목동병원의 늑장신고라든지 연이은 의료사고와 병원 내 위생관리 등 이미 언론에 수차례 보도된 문제들이 지적됐다.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 등 이 사안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이슈가 느닷없이 등장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문재인 케어를 하겠다고 하니 의사들이 다 나와 반대했다. 이런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했고, 김명연 자유한국당 의원은 “병원에 지장이 없다면 의사들이 왜 반대를 하겠느냐”며 “백날 해도 안 되는 게 대화다”라며 문재인 케어 관련한 정부의 소통 문제를 꼬집었다. 송석준 자유한국당 의원은 최근 북한 귀순 병사를 치료한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이국종 교수를 거론하며 대한민국 의료의 기를 살려줘라는 다소 뜬금없는 주문을 하기도 했다.

이날 많은 의원이 사고 발생 직후 병원이 직접 경찰이나 당국에 신고하지 않은 점을 지적했지만, 핵심 당사자인 병원 관계자들이 없던 터라 답은 들을 수 없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병원 관계자들을 부르려면 국회 의결을 거쳐 일주일 전에 통보해야 하는데 이 같은 행정절차 때문에 아예 논의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의원조차도 이날 회의의 한계를 지적했다.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은 “현재 정확한 사망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라 현안 질의 자체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인숙 바른정당 의원도 “국회는 수사기관이 아니고, 현재 가장 급한 것은 이대목동병원에 있었던 나머지 신생아 12명에 대한 후속 조치”라며 “우선순위를 따져 일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목적이 불분명한 현안 보고보다는 실무자들의 후속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회의를 앞두고 질본 직원들은 의원들의 쏟아지는 자료 요청에 밤을 새웠다. 신생아 사망원인을 밝히고 퇴원했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긴 12명의 신생아를 챙기는 데 힘을 쏟아도 모자랄 판에 국회의원 뒤치다꺼리에 힘을 뺐다. 박인숙 의원은 "자료를 요청해야겠지만 이 시점에 할 일은 아니다. 지금은 수습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게다가 원인 제공자로 알려진 이대목동병원 관계자는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질본 직원을 대상으로 두 시간 반 내내 늑장 대응 질타와 대책 마련 촉구로 끝났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MERS) 사태 이후 감염병 관리체계가 강화됐다. 질병관리본부장을 1급에서 차관급으로 격상시키고 컨트롤타워로 지정했다. 이번 사고 원인이 감염병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컨트롤타워인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이날 사고 해결의 지휘봉을 내려놓고 국회에 있었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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