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과 나-강명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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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며칠 전 저녁식사를 끝내고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옆집아주머니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들어온다.
도둑이 들었단다. 아직 채 어두워지지도 않았는데 뒷 베란다의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온 방안을 뒤지고 갔다는 것이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고사하고 벌써 한달 새 두번째나 당하는 일이라 무서워 못살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없을 때 들어온 게 천만다행이지요.』그와 나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저녁뉴스에서 들끓고 있는 서 울의 흉칙한 강도 사건을 듣고 가슴이 무겁던 차에 옆집에 도둑이 들었다니 한층 심란했다.
방범비는 꼬박 꼬박 내건만 어쩌자고 이런 일이 빈번히 일어난단 말인가.
하나마나한 일이겠지만 신고나 해야겠다며 옆집 아주머니는 나가셨고, 나는 무능한 경찰과 타인의 인명과 재산 뺏기를 아이들 전쟁놀이 하듯 하는 요즘의 범죄인들에게 원망과 분노를 느끼면서 서성거렸다.
잠시 후에 신고를 받고 순경 한명과 방범대원 한명이 나와 옆집의 방바닥에 난 신발자국을 살피고 깨어진 유리창을 돌아보았다. 형식적인 순서겠지.
그런데 웬일일까.
환한 불빛 아래서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순경의 얼굴을 보는 순간, 나의 무능한 경찰에 대한 원망스러움은 슬그머니 사라져 버렸다. 정말 근심스런 표정의 그 순경의 얼굴은 빨갛게 얼어 있었다.
『우리가 열심히 순찰을 해도 당할 수가 없어요. 인원은 달리고 범죄는 늘어나고….』
가능하면 집을 비우지 말 것과 비우게되면 파출소에 연락을 해 달라고 당부하며 떠나는 그 순경의 그 발걸음은 무척 무거워 보였다.
『미안합니다. 경찰관 아저씨들….』나는 속으로 사과했다. 몇몇의 사건들이 경찰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고 있어도 우리가 억울하고 두려운 일이 있을 때 뛰어 가야할 곳은 역시 파출소고 경찰이라는 자각이 새삼 들었다. <경기도 화성군 태안읍 송산5리 화산주택 바동 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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