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CEO, 연극배우가 된 까닭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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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리허설룸 앞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연극 배우 박승득씨. 조문규 기자

최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리허설룸 앞에서 중앙일보와 만난 연극 배우 박승득씨. 조문규 기자

“세몬, 세몬! 넌 뭘 하고 있는 거야.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무섭다고 떨고만 있다니.” 오후 9시를 향해 초침이 째깍였다. 지난 13일부터 무대에 오른 연극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리허설에서 독백 연기에 몰입한 박승득(62)씨 얼굴이 고뇌와 연민에 휩싸였다. ‘30년 증권맨’ 출신인 그는 환갑을 훌쩍 넘긴 ‘늦깎이 배우’다. 그렇지만 하루 4~5시간의 강행군 연습에도 지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 연극은 톨스토이 단편소설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다른 얘기들』(1885년)의 한 에피소드를 각색했다. 가톨릭 신자인 박씨는 신에게 벌을 받은 뒤 인간 세계에 온 천사 미하일을 돌보는 구두 수선공 세몬 역을 맡았다. 지난 12일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리허설룸에서 만난 그는 “사회적 약자에게 온정의 손길을 건네고, 선행(善行)의 본질을 깨닫도록 해주는 원작의 줄거리에 평소 관심이 높았다”며 “대학 시절 연극단 활동을 했던 경험 등이 어필되어 주연 배우로 캐스팅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서울가톨릭연극협회가 개최한 이 공연의 특징은 노숙자, 장애인, 가톨릭 신자 등으로 관객층을 나눠 공연을 연다는 점. 그는 “이달 15일엔 노숙자 쉼터인 서울 은평의 마을에서 노숙자를 대상으로, 24~25일엔 이음센터에서 장애인을 대상으로 무료 공연이 열린다”고 말했다. 18~20일엔 서초구 흰물결아트센터, 23~25일엔 서울 명동 성당 사도회관에서 가톨릭 신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유료  공연을 연다.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증권맨 출신 박승득씨.조문규 기자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증권맨 출신 박승득씨.조문규 기자

박씨는 지난 30년간 증권업계에 몸을 담았다. 1987년 동양증권(현 유안타증권)에 입사했고, 여러 자산운용사의 대표직도 거쳤다.
“영남대 재학 시절 우연히 연극 동아리 단막극 오디션에 나간 뒤 대학 연극단 입단을 제안받았어요. 이후 3년간 열다섯 편의 연극에 출연했지요. 가정형편 때문에 전업 연극배우가 될 생각은 못 했고, 현직에서 물러날 즈음이 돼서야 ‘제2의 도전’을 하게 됐네요.(웃음)”

그는 “내년부턴 유료 공연 수익금을 불우이웃에 전달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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