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사양했었다” 작가 한강이 밝힌 NYT 기고문 쓴 이유

중앙일보

입력

작가 한강(47). 박종근 기자

작가 한강(47). 박종근 기자

작가 한강(47)이 지난달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한 글과 관련해 “한국에 구체적인 사람들 살고 있다는 실감을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한강은 '문학동네' 겨울호에 NYT 기고한 글의 한글판과 함께 짧은 글을 실었다. 이 글에는 기고문을 쓰게 된 배경과 이후 정치적 논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담았다.

앞서 지난 10월 7일(현지시간) NYT에는 ‘미국이 전쟁을 말할 때 남한은 전율한다’는 제목의 한강 작가의 기고문이 실렸다. 작가는 기고문에서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를 들먹이는 미국 대통령을 비판하고, 한국인들은 평화가 아닌 다른 시나리오를 생각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강은 “이 기고문의 원래 제목은 '누가 '승리'의 시나리오를 말하는가?'였는데 NYT가 제목을 바꿨다”면서 “기사 게재 후 30일간 신문사 측에 저작권이 묶이기 때문에 모국어로 쓰인 원문을 이제야 실을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고문을 쓰기로 결심한 이유에 대해 “오직 한가지, 한국에 구체적인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실감을 전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고 밝혔다.

한강은 “기고문을 청탁받은 것은 5월이었지만, 당시에는 정중히 사양했다”면서 “이후 말들의 전쟁이 가속화되면서, 쉽게 전쟁을 말하는 위정자들의 태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마치 한국에는 어떤 위기에도 무감각하고 둔감한 익명의 대중만 존재하는 것처럼 여기는 국외 분위기가 염려스러웠다”고 전했다.

이어 “이 글은 기본적으로 NYT를 읽는 현지 독자들을 향해, 평화를 믿는 사람들이 연대해 전쟁의 가능성에 맞서기를 참작하게 제안하고자 한 것”이라며 “그래서 개인적 견해보다는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실제로 주변에 살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심정을 전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사진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그는 기고문 내용 중 논란이 됐던 ‘한국전쟁은 한반도에서 실행된 일종의 이념적 대리전’이라는 부분에 관해서도 설명을 덧붙였다.

한강은 “사족이지만, 북한의 독재 권력의 부당성은 모두가 당연하게 공유하는 상식적인 전제로 깔려 있으며, 한국전쟁의 성격에 대한 거시적, 복합적인 인식은 북한이라는 구체적 전쟁 발발자에 대한 지극히 상식적인 비판적 인식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 글이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색채를 띠고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국가의 단위를 넘어 보편적 인간의 관점으로 전쟁과 학살에 의미에 대해 간결한 질문을 던지고자 했다”고 전했다.

한편 작가는 문학동네에 게재한 글은 초고 전문으로 NYT에는 초고의 3분의 1 이상을 덜어내고 종이신문 규격에 맞춰 보냈다고 밝혔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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