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권이 가까이 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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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난공부락인줄만 알았던 우리의 대공산권 외교가 올림픽을 앞두고 급속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공산권국가로는 처음으로 헝가리가 오는3월 서울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키로 한데이어 금년중에 유고·폴란드·동독 등과도 실질적인 교역관계가 트일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아직은 실적이 미미하고 또 북한의 집요한 방해공작 때문에 섣불리 보따리를 풀 형편이 못되지만 이같은 추세가 지속되면 올림픽이후에는 대공산권 관계개선에 획기적인 변화가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 정부내의 일반적인 분위기다.
정부는 그동안 지난73년 6·23선언을 통해 공산권국가들에 대한 문호개방을 천명한 이래 이들 국가와의 간접교역은 물론 체육·학술·문화등 비 정치분야에서의 교류를 소리없이 증진시켜왔다.
그 결과 지난 한해만도 우리는 동구권주최 문화행사 및 국제회의에 85차례, 동구권개최 박람회 및 전시회에 4차례 참석했고 경제·실업계인사들이 헝가리·유고 등 동구권국가를 84차례나 방문하는 등 인적·물적 교류의 폭을 확대시켜왔다.
특히 서울올림픽유치를 계기로 본격화된 체육교류는 지난해2월 이세기 당시 체육부장관이 체코에서 개최된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에 참석한 것을 시발로 이들 동구권국가들이 지난해 우리가 주최한 체육행사에 27차례나 대표 및 선수단을 파견했다.
같은 아시아국가인 중공과의 체육교류는 더욱 돋보여 지난86년 아시안게임이후 7차례에 걸쳐 중공에서 열린 각종 체육대회에 우리선수단을 보냈다.
이와 함께 70년대 중반 유고를 중심으로 시작된 우리의 대공산권 교역은 작년에는 23억달러선에 이를 정도로 늘어났다.
물론 이같은 교역량은 비록 우리의 전체교역량 8백77억달러에 비하면 2·6% 수준에 불과하지만 지금까지의 교역형태가 홍콩·스위스·오스트리아 등을 통한 간접무역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역사무소 개설은 직접교역의 증가를 예고하는 것이다.
현재 공산권무역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중공의 경우 86년 교역량 약7억달러가 1년만에 19억달러로 2배 이상 늘어났다.
동구권과의 교역량은 지난해 약4억달러 수준으로 이중 소련과의 거래량이 제일 많고 동독·체코·유고순인데 가전제품 등 경공업제품을 수출하고 원목·유연탄 등을 수입했다.
최근에는 헝가리 등 일부 동유럽국가와 「환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교역분위기가 개선되었으며 민간기업들의 합작투자가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공산권과의 관계를 급속도로 진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뭐니뭐니해도 서울올림픽이라는 호재가 명분을 제공해주었고 세계 12대 교역국이라는 경제력신장이 동구권의 관심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동구권국가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고르바초프」등장이후의 개방화물결이 동구권에 대한 북한의 견제를 한껏 느슨하게 한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우리의 경우는 기존의 무역창구가 선진제국의 각종 보호무역조치 등으로 죄어지고 내부의 팽창압력은 점점 높아가고 있어 동구권 등 새로운 돌파구를 개척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동구국가들은 8백11억달러라는 엄청난 외채를 안고있으며 두자리 숫자의 인플레와 만연된 경제불황에 시달리고 있어 우리의 의욕이 곧 현실화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또 앞으로 우리의 대공산권 관계개선을 결코 낙관만 할수없는 요인이 적지 않다.
첫째, 공산권외교는 조용하게 비밀히 추진하지 않으면 안되는 제약요인이 있다. 최근 있었던 헝가리무역사무소 설치발표처럼 3월 동시발표라는 양국간약속이 깨진 것은 앞으로 대공산권 접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국내 정치적 수요 때문에 공산권 외교를 「홍보적 차원」에서 이용하려 한다면 걸음마단계에서 허물어지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최근의 떠들썩한 분위기 때문에 앞으로 한달이면 이룩할 수 있는 성과가 1년 이상걸려야 나타날까 말까하다고 외무 당국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둘째, 우리의 대공산권 외교의 궁극적 목표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대북한 관계개선의 보조수단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볼때는 그 나름의 실익이 있을지라도 공산권 외교는 결국 북한의 잠긴 문을 여는 열쇠구실을 할때 비로소 돋보일 수 있는 것이다.
셋째, 공산권과의 관계개선에 있어 역시 이데올로기의 장벽이 높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 공산권과의 경제교류가 활발해진다해도 중공을 제외한 동구권과의 교류는 과거 중동경기식의 호황은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넷째, 동구권 외교가 강화되면 우리도 이제 기존 외교망을 재편하지 않을 수 없다. 유엔에서 북한과의 득표경쟁 때문에 아프리카나 남미오지의 나라들과 비생산적인 수교확대에 열을 올리는 방식이 지양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결론적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한 우리의 대공산권 외교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서두르지 말고 하나하나 실적을 쌓아가는 점진적인 접근방식을 추구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이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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