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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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당면만 경제과제 중에 가장 어렵고도 급한 것은 역시 물가문제다. 제 5공화국의 경제치적 가운데 제일 먼저 손꼽는 것이 물가안정이었는데 5공화국의 마감과 더불어 물가안정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작년 12월부터 물가가 심히 동요하기 시작, 최근 2개월 동안에 도매가 1·5%, 소비자가 1·8%나 올랐다.
최근의 물가상승은 일과성이 아니라 구조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한마디로 말해 경제운용을 너무 방만이 또 의욕적으로 해온 결과다.
최근 몇 년의 경제성장은 우리의 잠재력을 넘어선 것이었고 그것이 물가 동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작년 이후의 방만한 통화관리가 가장 큰 몫을 했다. 거기다 임금인상, 선거를 전후한 돈 살포, 행정이완, 공약남발 등이 겹쳤다.
또 한동안 잠잠하던 국제원자재 값도 유가를 제외하면 모두 들먹거리고 있다.
원가인상 압력과 총수요 증대의 양면에서 안정기조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더 근본적 문제는 지난 몇 년 동안 어느 정도 정착되었던 물가안정에 대한 국민적 콘센서스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크게 오르는 부동산값이나 증권투기 붐 등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사실 국민들은 물가 오른 것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지난 2개월 동안 물가지수가 1·5∼1·8% 오른 것도 적은 것은 아니지만 실제 가계에서 느끼는 물가 상승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다.
집 값이나 서비스 값은 가계엔 큰 영향을 주지만 물가지수엔 늦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가정책은 현재의 물가상황이 매우 심각하며 이대로 두면 큰일난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런데도 마침 정권 교체기에 있어 그런지 물가안정의 중요성, 시급성이 뒷전으로 밀리는 것 같아 심히 우려된다.
최근 간헐적으로 나오는 물가대책이란 것도 대증 요법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옛날엔 물가대책으로서 긴급 무제한 수입이나 행정규제 등의 방법이 잘 동원되었고 더러 효과도 보았다. 그러나 앞으로는 그것이 통하지 않는다.
우선 최근에 값이 오르는 것을 수입해서 공급할 수 없거나 효과가 없는 것들이 많다.
또 옛날과 같은 직접적 가격규제도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물가정책은 원가상승 면과 총 수요 면을 모두 고려한 종합적 접근이 아니면 안 된다.
물가정책 따로 있고 공약정책 따로 있고 임금정책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밀접히 연관되어 상호영향을 준다.
그런데도 상호연관성을 간과한 채 할 것은 다하면서 물가안정을 바라는 풍조가 없지 않다. 그야말로 연목구어다. 물가안정을 위해선 고통과 희생이 필요하다.
현재의 물가상황이 심각한 만큼 심각한 고통과 희생을 치를 각오가 돼야 물가안정의 틀이 잡힐 것이다.
물가안정을 위한 정부의 각오와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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