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표 부총리 소신 어디갔나… "자립형 사립고 확대" 이달 중 발표한다더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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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59) 교육부총리는 '자율경쟁'과 '시장원리'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한다. 교육이든 경제든 수요공급 원칙에 따른 경쟁을 통해 발전한다는 소신이다. "30여 년간 정통 재무관료로 일하면서 몸에 밴 철학"이라는 게 주변의 말이다. 경제부총리(2003년 2월~2004년 2월)를 마친 뒤 지난해 1월 또다시 교육부총리로 입성한 그는 경제 발전과 교육의 경쟁력을 연계시켰다. 학교에 자율권을 확대하고 소비자격인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 개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소신의 대표적 실천과제가 '자립형사립고'(자사고)다. 김 부총리는 자사고의 확대를 해마다 주장해 왔다.

경제부총리 재직시절인 2003년엔 "강북에 특목고와 자사고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자사고에 대한 김 부총리의 소신은 확고부동한 듯했다. 그는 12월 22일 천주교 수원교구청 이용훈 주교를 만나 "자사고를 20곳 정도로 확대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올 2월 중 발표하고 3월까지 시.도 교육청별로 한두 곳을 지정해 2007학년도부터 신입생을 모집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입장을 바궜다. 지난달 18일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통한 사회통합'을 골자로 한 신년연설을 한 직후다.

노 대통령은 "빈곤이 대물림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이 발언을 "교육의 양극화를 잡겠다는"의지로 받아들였다.

노 대통령의 신년연설 20일 후인 지난 8일 김 부총리는 업무계획 설명회에서 "자사고로 전환할 수 있는 학교는 두세 개 정도에 불과하고 확대가 어려운 배경이 있다"고 말했다. 며칠 뒤인 11일 EBS 생방송 토론회에서는 "평준화는 학교 선택권이 제한되고 학생의 만족도도 떨어진다"고 평준화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사고가 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교육 때문에 빚어지는) 부동산 문제의 대책으로' 자사고를 늘려나가야 한다던 기존의 주장과는 달라진 것이다. 이 때문에 교육계에선 "결국은 코드 맞추기"라는 실망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립 중.고등학교 법인협의회 이현진 부장은 "김 부총리는 자사고 신청을 받아보지도 않고 가능한 학교가 두세 개밖에 안 된다면서 여론을 호도한다"고 비난했다.

2월 중 자사고를 확대한다던 김 부총리의 장담은 실현불가능하게 됐다. 심사→인가→시설 준비→신입생 선발→내년 개교 등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일정상 이미 불가능하다.

양영유 기자

◆ 자립형사립고=학생 선발과 등록금 책정, 교과과정 운영 등이 자유로운 학교다. 대신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지 않는다.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측면에서 각광받고 있다. 2002년부터 민족사관고.상산고.현대청운고.포항제철고.광양제철고.해운대고 등 6개교가 시범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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