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수혈로 체질 개선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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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통령 선거 패배 이후 2개월 가까이 진통을 거듭해온 평민 당이 김대중 총재의 복안대로 재야영입이라는 「긴급수혈」을 통해 재기를 선언하고 나섰다.
1백여 명에 이르는 재야 영입인사는 지금까지 꾸준히 거론돼 오던 이돈명 변호사·이문영 교수·이소선 여사 등이 「보류」상태에 있어 이른바 명망가보다 70년대 이후 장외 운동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젊은 운동권이 중심이 된 특징을 보이고 있다. 말하자면 그 동안 김대중씨를 지지해온 이른바 「김」세력의 영입에 지나지 않으며 재야 전체와의 제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의 「합류」로 인해 평민 당 은 종래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우선 인적 비율에 있어 「당내 파」와 「재야 파」가 50대50으로 당을 반분하게 됐고, 당 지도체제에선 카리스마적인 김 총재 휘하의 단일 지도체제에서 집단 지도체제로 바뀌는 한편, 노선 상으론 보수와 진보의「접합」이라는 단순한 외형적 현상에서 벗어나 보다 더 극명한 진보 성·혁신 성을 띠게 됐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선 평민 당이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구호로만 외쳐오던 계층이익 대변정당의 성격이 이번의 체질변화를 통해 분명한 방향을 잡게됐고, 이 점에서 한국 정당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도 평가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평민 당으로선 이번의「긴급수혈」이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는 물론 오는 총선에서도 가장 큰 장애물로 간주되는 「호남 당」의 부정적 이미지에서 탈피하는데 매우 긍정적인 기대를 걸고 있는 듯하다. 몇 당 관계자들이 『이제 비로소 평민 당이 국민정당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며 반색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됨직하다.
그러나 평민 당의 면모 일신이라는 당내소득과는 별도로 모든 통합논의가 이로써 완전히 종식되고, 특히 민주당과는 「제1 야당」을 위한 치열한 경쟁만 남게됐다는 국민불만 측면에서의 「상심」문제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민주·평민 양당간의 통합은 물론 재야 및「서명 파」등 군소 정당들과의 통합논의 자체가 완전히「끝이 났다」는 얘기다.
대통령선거 패배의 책임을 거의 혼자 지다시피 하며 당 안팎으로부터 통합압력을 받아온 김 총재로선 자신의 지지기반의 하나인 재야의 뒷받침에 힘입어 일단 당 재건의 기틀을 마련한 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긴 하나 그와 동시에 김 총재의 권위는 크게 후퇴한 형국을 띠고 있고, 영입된 재야 측에서도 당의 노선문제 등을 놓고 김 총재를 향해 「높은 목소리」를 내며 브레이크를 걸 가능성도 농후해 평민 당 은 김 총재의 거취 문제와 결부돼 일종의 「실험단계」에 와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재야영입을 통한 당의「재건」에 대한 기존 당내 인사들의 반발요인도 주목거리다.
이것은 당 지도 체제문제보다 노선문제와 특히 관련된 것으로 재야 입당이「신선한」수혈이 되기보다 극심한 노선 대립을 초래하지 않겠느냐는 분석도 낳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보수가 체질화된 구 야당계 의원들에게는 재야의 진보 색채가 체질상 맞을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또 중산층이 많은 일부 지역구 의원들은 「기층민중 이익대변」 「민중생존권 적극 보장」등의 정강정책이 자칫 혁신적 계급정당으로 「오인」될 경우 무엇보다 총선에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며「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2일 당 진로확정→3일 재야 인사영입 →당 체제개편→임시전당대회→ 총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또 다른 탈당 등 얼마쯤의 내부진통이 반복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평민 당이 재야영입과 지도체제 개편을 계기로 진보적인 정당으로 등장할지, 아니면 구 야당세력의 주도권 장악 속에 온건보수의 엉거주춤한 자세로 나갈지 여부가 총선 전략 및 그 이후 평민당의 존립을 결정하게될 것이다.<고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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