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박근혜 증언, 역사의 기록에 남겨야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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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없는 ‘박근혜 재판’이 현실화됐다. 재판부는 어제 ‘피고인 박근혜’에 대해 궐석(闕席)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박 전 대통령이 ‘정당한 사유 없이 출석을 거부하고, 교도관에 의한 인치(引致)가 현저히 곤란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박 전 대통령은 국선변호인의 접견은 물론 재판 자체를 ‘보이콧’하기로 굳힌 듯하다. 극적 반전이 없다면 1심 선고는 박 전 대통령의 육성 증언이 단 한마디도 없는 비정상적 상황에서 나올 공산이 커지고 있다. ‘세기의 재판’이란 의미가 크게 퇴색된다는 점에서 못내 아쉽다.

박 전 대통령의 변론 포기는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다. 그는 재구속이 결정된 직후인 지난달 16일 법정에서 “오직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을 할 것이라는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선언했다. 또 “법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며 변호인단을 철수시키며 ‘옥중 투쟁’에 돌입했다. 박 전 대통령의 방어권 포기와 궐석재판에 있어 법률상 하자는 없다. 앞으로 재판은 당사자가 빠진 상태에서 검찰의 일방적인 독주 속에 일사천리로 흘러갈 것이다. 법적 형식은 충족될지 몰라도 ‘반쪽 재판’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다. 판결 불복과 소모적 논쟁도 우려된다.

이번 재판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진 원인과 과정을 규명하고, 불행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의 장이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건의 중심에 서 있던 박 전 대통령의 증언을 끌어내야 한다. 파행의 1차적 책임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있다. ‘이게 나라냐’고 할 정도로 총체적 혼돈에 빠뜨린 장본인이 법정에 나와 경위와 전말을 솔직히 털어놓고 법의 심판을 구하는 게 도리다. 재판부도 보다 전향적인 방안을 제시해 박 전 대통령을 불러내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재판을 부실한 역사의 기록으로 남길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