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시절 핵미사일 기지, 공유 숙박사이트에 첫 등장

중앙일보

입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격납고가 공유경제 숙박사이트 ‘에어비앤비(Airbnb)’에 등장했다.

미 캔자스 핵미사일 기지 개조한 500평 지하 맨션 #미사일 발사 장치까지 유지한 채 일반인에 대여 #북핵 등 위기 의식에 美 지하벙커 사업도 활황 #

핵전쟁 등 ‘지구 종말의 날(Dooms Day)’에 대비해 지하벙커를 개발해 분양하는 사업들이 활발해졌지만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이런 시설을 개조해 내놓기는 처음이다. 에어비앤비는 거주 시설을 소유한 주인이 이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시설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공유’한다는 취지로 운영되고 있다.

서브테라 캐슬의 거실. [에어비앤비 캡쳐]

서브테라 캐슬의 거실. [에어비앤비 캡쳐]

27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이 맨션은 ‘서브테라 캐슬(Subterra Castleㆍ지하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미국 캔자스주 토페카 근교에 만들어졌다. 지상 전체 부지가 4만여 평(약 13만3546㎡)에 이르며 지하 공간은 500평 규모다. 침실과 넓은 거실은 물론 조리실과 식당, 목욕탕까지 갖춰 호텔 스위트룸 못지않게 활용할 수 있다.

서브테라 캐슬이 ICBM 기지였을 때 모습. [에어비앤비 캡쳐]

서브테라 캐슬이 ICBM 기지였을 때 모습. [에어비앤비 캡쳐]

서브테라 캐슬의 현재 지상 모습. [에어비앤비 캡쳐]

서브테라 캐슬의 현재 지상 모습. [에어비앤비 캡쳐]

이 넓은 공간은 냉전시대 핵 ICBM 기지였다. 1959년에 미군에 의해 건설됐으며 60년대 초에 실제 핵 ICBM이 배치된 군사시설이었다. 60년 중반까지 군 기지로 활용되던 이곳은 이후 버려진 채 30년 가까이 방치돼 있었다. 이를 다이애나 패든 부부가 94년에 사들여 ‘지하 맨션’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이를 이웃이던 매튜펄커슨이 다시 매입해 본격적인 지하 주거 공간으로 꾸몄다. 대학에서 주거 관련 학문을 전공하고 20여 년간 각지를 여행한 그는 올봄 이 곳을 다른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서브테라 캐슬 통로에서 포즈를 취한 펄커슨 부부. [AP=연합뉴스]

서브테라 캐슬 통로에서 포즈를 취한 펄커슨 부부. [AP=연합뉴스]

지하 맨션에 머무르는 이들은 단순한 숙박만이 아닌 특별한 경험도 할 수 있다. 핵 ICBM이 배치됐을 당시 운용됐던 미사일 발사 통제실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펄커슨은 “이 장소에는 히로시마 원자폭탄보다 32배 더 파괴력을 지닌 핵 ICBM들이 배치돼 있었다”며 “이 곳에서 근무한 병사들은 언제라도 그 미사일들을 발사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고 소개했다.

서브테라 캐슬 내부에 있는 과거 미사일 발사 통제실. [에어비앤비 캡쳐]

서브테라 캐슬 내부에 있는 과거 미사일 발사 통제실. [에어비앤비 캡쳐]

이 공간이 지닌 역사적 스토리와는 달리 내부는 에어비앤비 사이트에 올려진 사진을 보면 고풍스러우면서도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1박을 이곳에서 머무르는 비용은 한화로 15만원 정도다.

한편 미국에서는 최근 북한 핵 위협 등 지구 종말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지하벙커 사업이 호황기를 맞고 있다. 일반 주택용 지하벙커를 제작해 설치해주는 곳은 물론 아예 집단 주거 공간을 만들어 분양하거나 지하호텔까지 건설하는 업체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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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사스의 지하벙커 제작사 ‘라이징 S 컴퍼니’는 연초에 비해 한 달 매출이 5배나 증가했고, 로스앤젤레스(LA)의 ‘아틀라스 서바이벌 쉘터스’도 올해 창사 36년 만에 최고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미 캘리포니아의 회사 비보스는 사우스다코타주의 군용 창고로 사용됐던 벙커시설을 사들여 최신식 ‘벙커 마을’로 개조했다. 575개 벙커에 최대 5000명을 수용할 수 있고 체육관ㆍ스파ㆍ의료시설 등을 갖췄다.

부동산 개발업체 배스천홀딩스는 미 조지아주 사바나 근처에 5성급 벙커를 건설했다. 방사능과 같은 오염물질을 씻어낼 수 있는 특수 샤워실까지 구비한 이 곳의 집 한 채는 1750만 달러(약 190억원)에 분양되고 있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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