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서 가난 퇴치로 피플 파워 방향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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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전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엣샤(EDSA) 성당. 피플 파워(People Power.1986년 마르코스 정권을 무너뜨린 민중의 힘) 20주년 기념미사에 참석한 코라손 아키노(사진) 전 필리핀 대통령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20년 전 피플 파워로 집권했던 자신이 피플 파워로 현 정권에 대항하는 착잡함 때문이라고 했다. 위기의 필리핀을 구하기 위해서는 기업 마인드를 곳곳에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미사 전에 그를 따로 만났다.

-피플 파워 20년을 평가한다면.

"20년 전 시민들은 독재와 부패를 무너뜨리기 위해 일어섰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똑같은 목적을 위해 시위를 하고 있다. 그런 현실이 안타깝다. 피플 파워의 진정한 목표는 민주와 평화, 경제 발전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했다."

-그 이유를 무엇이라고 보는가.

"정부의 리더십 부재, 경제 분야를 비롯한 각종 개혁의 실패, 부정부패 그리고 사회 불평등 때문이다. 특히 현 글로리아 아로요 정권은 지난 5년간 거의 모든 개혁에서 실패했다. 2년 전에는 선거 부정까지 저질렀다. 내가 또다시 거리로 나서 반정부 구호를 외치는 이유다."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우선 해야 할 일은.

"기업 마인드를 가진 전문가들을 앞세워 각 부문을 개혁해야 한다. 정부는 기업들과 고용을 창출하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일자리가 늘어나야 빈부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이것이 가장 화급한 과제다."

-피플 파워에서 정치적 구호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이제 피플 파워는 민주화에서 가난을 퇴치하는 힘으로 변해야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보다 많은 시민이 교회에서 추진하는 빈자를 위한 사회공동체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비상사태 선언은 적절한가.

"현 정권은 민주가 아니라 독재로 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야 한다. 나는 아로요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시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마닐라=최형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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