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법안 독자 제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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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이 독자적으로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기 위해 관련 법률 개정을 추진 중이다. 현행 헌법(제52조)에는 국회의원과 정부만 국회에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

대법원의 한 관계자는 26일 "이용훈 대법원장의 지시에 따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과 사법정책실 등에서 법원조직법 등에 대한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법원 인사나 재판 사무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개정안을 법무부를 통해 정부안 형태로 제출했다"며 "이 과정에서 관련 법안이 정부 입장에 따라 수정되거나 지연 처리되는 등 문제점이 많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우선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대법원장이 가진 '의견제출권'을 강화할 계획이다.

법원조직법(제9조 3항)은 "대법원장은 국회에 법원의 조직.인사.재판 등과 관련한 법안에 대한 의견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 조항에 "국회는 대법원이 제출한 안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단서조항을 넣어 실질적인 법안 제출권을 확보할 방침이다.

대법원은 또 법원조직법만 개정할 경우 위헌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 점을 고려, 헌법 조항에 사법부의 법안제출권을 넣는 방안도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법무부는 "사법부가 법안 제출권마저 가질 경우 3권 분립의 원칙을 침해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뉴스 분석] 대법원 명분은 "사법권 독립"
전문가들 "외국서도 유례없어"

대법원이 독자적인 법안 제출권을 가지려는 명분은 '사법권 독립'이다. 판사 정원을 늘리는 것 등 법원 조직과 관련된 사안을 고치려 할 때마다 법무부 등 정부의 눈치를 봐왔다는 것이다. 대법원 측은 이를 근거로 "사법부가 행정부에 예속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해 1월 호주제 폐지에 맞춰 새로운 신분등록법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법안 일부가 법무부에서 수정되자 불만을 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현실적인 방안을 찾은 것이 법원조직법상의 '의견 제출권'이다. 대법원은 지난해 법원행정처장을 정무직으로 바꾸는 법원조직법.판사정원법 개정안 처리 때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해 원안대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 또한 의원입법 형태로 상정돼 처리됐기 때문에 대법원의 입장에선 결과를 확신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의견 제출 시 국회가 이를 '반드시' 처리토록 하는 규정을 신설해 권한 강화에 나선 것이다.

법무부 등에서는 "대법원으로의 권한 집중이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의 원칙인 3권 분립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연세대 법대 김종철 교수는 "대법원의 법안 제출권은 외국에도 유례가 없다"고 말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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