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청탁금지법 1년, 농업 경쟁력에는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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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김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교수

김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교수

청탁금지법이 시행 1년을 맞았다. 문화체육관광부 발표에 따르면 90%에 가까운 공직자가 부조리와 부패 관행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2012년 이 법을 추진한 김영란 교수(서강대)는 “청탁금지법은 처벌 조항이라기보다 행동 규범에 가깝다”며 사람들의 경각심 고취 목적을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청탁금지법은 길지 않은 시간에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법이 국민 모두의 이해 관계를 반영해 정착한 것인지는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법 시행 후 처음 맞은 지난 추석 때 농축산물 선물세트 거래액은 전년 대비 26% 줄었다. 국내산 쇠고기와 과일 선물세트 판매액은 각각 24%, 31% 감소했다.

우리 농축산물 구입 목적을 보면 명절 선물용 비중이 높다.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주요 유통업체의 연간 농식품 매출액 20조2000억원 가운데 20∼22%가 명절에 일어난다.

명절 선물로 농축산물을 선택하겠다는 비율은 회사와 가계가 각각 55.3%, 60.2%로 나타났다. 다른 명절 선물을 선택하겠다는 비율보다 압도적으로 높다. 이는 세계무역기구(WTO)와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따른 시장개방에 대응해서 정부가 지속해서 추진한 농축산물 고급화 정책에다 농업인의 경쟁력 향상 노력이 더해져 거둔 결실로 볼 수 있다.

농축산물 품질향상과 상품화를 통한 가치 제고는 시장개방 시기에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한국 농업이 추구해온 목표였다. 이제 그 싹이 움트기 시작했다.

그런데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농식품 소비 관련 빅데이터 분석을 보면 그 싹이 위협받는다. 지난해 추석에 인기였던 ‘굴비, 한우, 프리미엄 세트’가 올 추석에는 ‘수입산 엘에이(LA) 갈비, 수입산 굴비, 실속 세트’로 대체됐다. 어려운 경제상황도 한 원인일 수 있지만 국내산 농축산물에까지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청탁금지법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물론 청탁금지법으로 부조리 관행을 개선하고 공정한 사회로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렇지만 추정적 의심 때문에 한 산업을 어렵게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청탁금지법 시행 1년의 경과를 농업과 농업인의 입장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전면 시장개방에 대응해 경쟁력 향상이라는 한국 농업의 목표가 싹트는 시점에 청탁금지법이 폭풍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소한 어느 시점까지라도 경과적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물론 장기적으로 농업 분야 역시 국민적 공감대를 거쳐 시행하고 정착한 법에 맞춰 대응할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다. 청탁금지법이 농업 경쟁력 향상이라는 국가적 이익을 고려해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법으로 자리 잡길 바란다.

김한호 서울대학교 농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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