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들 사치벽 부엌까지-수입 자유화 이후 부쩍 과열 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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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부엌사치가 날로 심해지고 있다. 종래 주부들만의 장소로 소홀히 취급돼 오던 부엌이 주거양식의 변화에 따라 생활공간의 중심으로 바뀌면서 일기 시작한 주부들의 부엌 단장은 수입 자유화 이후 일부 주부들 사이에서 부쩍 과열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최근 주부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고 있는 조리기구는 로열 퀸 남비. 5중 바닥으로 된 이 미국산 남비는 1세트가 7개로 자그마치 1백20만원.
남비 뿐 아니다. 26만원이 법는 코피 잔 세트, 1백70만원 대의 가스 테이블, 2백 만원 가까이 되는 방짜유기 (놋그릇), 백자 반상기 등 부엌용기는 말할 것도 없고 부엌 장·식탁 등 부엌 가구도 1백만∼2백 만원을 넘는 고가 품으로 치장하는 가정이 날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에는 은식기류까지 등장, 개당 30만원 안팎의 은 접시라든지, 1백50만원 상당의 은 주전자·쟁반 세트에 은 밥솥까지 나돌고 있는 실정.
값비싼 수입품 조리기구는 대부분 방문 판매나 특정 가정에서 이웃을 초대하는 홈 파티 형식으로 판매되고 있다. 홈 파티는 특정 조리기구를 사용한 무료 요리 강습이주가 되는데 조리 시간절약, 영양가 보존 등의 제품선전이나 같이 갔던 주부들의 구매 분위기에 휩쓸려 덩달아 사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국소비자연맹 김성숙 총무는 말한다.
반상기나 은제품 등 국내에서 생산되는 주방용구는 10명 안팎의 주부들이 모여 계를 조직, 사들이는 것이 일반적인 예. 한목에 큰돈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실제로 엄청난 고가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 같다는 것이 금씨의 분석이다.
그러나 이 같은 호화 부엌용품은 실용성이 낮고 아프터 서비스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6인조에 1백48만원이나 하는 오스본 디너세트의 경우 양식 만찬을 즐길 일이 별로 없는 우리네로서는 큰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부엌용기다.
또 수입품의 경우 부품공급이 갈 안되고 부품 교체가 가능한 경우도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 예컨대 15만원인 휘슬러 압력밥솥의 손잡이가 떨어져나가 교체할 경우 5만원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서병숙 교수 (한양대 가정관리학) 도 같은 의견. 그는 『부엌에 있는 기구는 가사노동을 절감시키는 것이 주요 기능』이라고 못박고 『기능 면에서 적합하다면 굳이 고가 품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고 잘라 말한다.
부엌용품이 지나치게 비싼 것일 경우 오히려 쓰는 사람이「물품의 노예」 가 될 우려가 많으며 아예 쓰지 않고 모셔 두는 난센스를 빚게된다는 것.
그는『비싼 조리기구는 대를 물려줄 수 있으므로 이득이라는 이들도 있으나 조리기구의 발달, 많은 돈이 잠겨 있다는 점등을 감안할 때 한갓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집안에 물건을 들여놓을 때는 가족들이 함께 의논, 긴요도·활용도·전용도(여러 가지로 두루 쓸 수 있는 것)를 따져보고 결정해야 하며 특히 부엌용품은 파손 때 쉽게 대처할 수 있는지를 염두에 두라고 충고했다.<홍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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