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추적]수능 전 화재로 숨진 고3 여고생의 '못다핀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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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발생한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화재로 4인가족 중 2명이 숨졌다. 숨진 고3 여학생이 명문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지난 14일 발생한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화재로 4인가족 중 2명이 숨졌다. 숨진 고3 여학생이 명문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모든 면에서 최고의 학생이었는데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학교 내 최고로 불렸던 학생 화재로 숨져 #명문대 수시모집 도전...23일 수능 예정 #경찰 등 화재 원인으로 전기장판 지목 #성남시, "아픔 이겨낼 수 있도록 도울 것" #

2018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실시된 2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A고등학교.
익명을 요구한 이 학교 교사는 지난 14일 아파트 집에서 발생한 전기장판 화재(추정)로 숨진 B양(18)을 이렇게 추모했다. 학생회 임원이었던 B양은 학습능력·교우관계·학교생활 등 모든 면에서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또 다른 교사도 B양을 높게 칭찬했다.

더욱이 B양은 서울시내 한 명문대 수시모집에 도전한 상태였다. 해당 대학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맞추기 위해 이날 수능 시험을 치를 예정이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과 달리 B양은 수능을 치르지 못했다.

이 학교 관계자는 “오늘이 수능일인데…(B양은) 시험을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 했다.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화재로 숨진 B양이 생전 다니던 학교에서 23일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김민욱 기자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화재로 숨진 B양이 생전 다니던 학교에서 23일 수능시험이 치러지고 있다. 김민욱 기자

B양의 비극은 화재 때문에 빚어졌다고 경찰은 전했다. 지난 14일 오전 2시40분쯤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한 아파트(총 15층)에 사는 주민 C씨는 타는 냄새에 잠을 깼다. 창밖으로 시커먼 연기와 빨간 불꽃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아래층 B양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해 연기가 윗층으로 뿜어져 올라 왔다.

불은 C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에 의해 23분 만에 꺼졌다. 160㎡의 집안 내부는 대부분 타거나 그을렸다. 이날 불로 B양의 어머니(48)가 현장에서 숨졌다.당시 방안에 쓰러져 있던 B양은 소방대원에 의해 구조돼 호송됐지만 안타깝게도 결국 숨을 거뒀다. B양의 아버지(51)와 오빠(20)는 팔과 다리·얼굴 등에 화상을 입어 병원 치료 중이다.

화재로 집안 내부가 타거나 그을린 모습.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화재로 집안 내부가 타거나 그을린 모습.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수능이 진행 중인 23일 오후 기자가 직접 찾아간 화재 현장 아파트는 여전히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베란다 창문틀은 고온에 녹아 휘었고, 중간중간 시커멓게 탔다. 깨진 창문 너머로 불에 탄 거실 천장이 보였다.

현재까지 경찰·소방당국 조사에서 화재 원인으로 전기장판이 지목되고 있다. 전기장판에 전원을 공급하는 선이 꺾이면서 ‘절연파괴(dielectric breakdown)’가 일어나 불이 났다는 것이다. 절연파괴는 갑자기 심한 전류가 흐르는 현상으로 불꽃을 일으킨다. 전선이 열에 녹았다 둥근 모양으로 굳은 ‘용융 흔’도 발견됐다. 발화 시작지점 옆 가구는 시커멓게 탔다.

화재가 났던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모습. 김민욱 기자

화재가 났던 경기도 성남 분당아파트 모습. 김민욱 기자

다만 최종 화재 원인이 담길 소방당국의 화재발생종합보고서는 아직 작성이 끝나지 않은 상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분석결과 역시 마찬가지다. 전기장판의 결함 여부는 아직 최종적으로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

이 전기장판은 화재 당시 B양의 오빠 방에 있었다고 한다. 대학에 재학 중인 오빠는 분당 집에 함께 살지 않았는데 모처럼 집을 찾았다가 화재를 당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성남시 측은 가족들이 평소 전기장판의 이상을 발견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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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양 가족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성남시는 화재 피해 가족 지원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B양 가족이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편이 아니라 주로 정신 건강 분야를 지원할 예정이다. 성남시 관계자는 “가족의 아픔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재난안전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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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전기장판류로 인한 사고가 해마다 60건가량 발생하는 만큼 겨울철에 특히 주의가 요구된다. 2014년 65건, 2015년 66건, 지난해 61건 등이다.

소방당국은 난방기기의 경우 전원을 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용하지 않을 때는 반드시 콘센트에서 플러그를 꼭 빼놔야 한다고 당부한다. 전원이 꺼져있어도 불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남=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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