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야권통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13대 총선이라는 절박한 대결전을 앞두고 민주·평민당과 그 밖의 신당세력 등이 야권통합을 위한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야권통합」이란 것이 한 야당중진의 말마따나 역사적 흐름이요, 국민여망의 대명제이기도 하지만 야당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위기 앞에 불가피하게 일어나고 있은 자구노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김영삼·김대중 두 김씨의 정치적 욕망, 각당의 사활, 의원각자의 이해관계에 협상초입단계인 선거구조정문제와 맞물려 있는 데다 신당파, 재야문제까지 경쳐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전도예측이 어렵다.
야권통합움직임은 ▲민주당 김영삼 측의 대평민당 공략 ▲평민당의 야권통합파 ▲무소속의원 5인조와 신당추진세력 등으로 크게 나눠볼 수 있다.
이 세 가지 흐름은 서로 얽혀있고 한쪽의 움직임이 다른 쪽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어 서로 경쟁적인 성격도 띠고 있다.
김영삼 총재의 야당통합은 총선 전략이기도 하지만 응보적인 성격도 없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는 야권이 단일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통합의 장애요인인 두 김 퇴진론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총재 측은 이런 여론을 뒤집기 외해 평민당을 깨뜨리고 축소시킴으로써 민주당중심의 야권통합이 어쩔 수 없는 문선의 방안이 되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래서 김총재와 민주당당직자들은 이에 동요하고 있는 평민당의중부지역출신 의원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흡수교섭을 벌였다. 그런 노력덕분에 몇몇 의원들이 민주당행을 내락, 금명간 가시화될 전망이다.
김총재 측은 또 박찬종의원 등 무소속의원들에게도 영입가능성을 비치고 재야영입에도 나서 그런 대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 같은 민주당 측 공세 때문에 평민당의 내부가 크게 흔들리고 있는 게 사실. 대통령선거패배의 충격을 가장 심각하게 받아 당내에 위기감이 팽배해온 데다 김대중 총재의 권위적 지도노선에 대한 반발, 지역구 사정 등이 겹쳐 서울·충청 등 중부지역 출신들은 자신들의 진로를 심각하게 재검토하고 있는데 곧 탈당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날 것이 예상되고 있다.
탈당파들은 양정직 전 부총재와 유제연·김현수·김성식·장기욱 의원 등. 그밖에도 김대중총재 심복 중 한명인 이용배 의원 등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고 이중재·노승환 전 부총재 등도 오락가락하는 형편.
지난20일 탈당파5인과 이들 3전문중재들이 만난 자리에서 이 달 말을 시한으로 정해놓고 먼저 김대중총재의 의사를 타진한 뒤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했는데 이것은 앞으로의 행동을 합리화시킬 명분을 얻기 위한 절차에 불과한 느낌이다.
김총재가 어떤 대응방안을 취할 지에 따라 앞으로 이들의 행동방식도 정해지겠시만 김총재가 총재사퇴 등 극적 조치를 취하기보다는 그를 지지하는 재야를 끌어들여 집단지도체제를 택하는 방향으로 나가기 쉽고 그렇게되면 이들도 탈당결행의 명분을 얻게될 것이다.
이들이 평민당을 이탈할 경우 평민당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것이 틀림없다.
평민당 측은 민주당을 여당과 야합하는 제2의 민한당으로 매도하고 선명성을 부각시켜 나가려 들겠지만 자칫하면 당의 컬러가 「호남당」으로 위축될 수도 있고 이것이 당의 동요를 더욱 가속화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주당 형편이 반드시 나아진다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탈당파들의 생각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김현수 의원 등 일부는 민주당 쪽으로 거의 기울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기욱 의원 등은 「양금퇴진-야권통합」을 추진하는 무소속 5인의 신당쪽으로 갈 공산이 크고 몇 의원도 아직 태도를 못 정한 채 엉거주춤하고 있다. 당장 민주당으로 가자니 떳떳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민주·평민 양당의 동요에 무소속 신당파들은 크게 고무 받고 있다.
그 동안 신당을 추진해왔던 재야세력들은 잡다하다. 이들은 ▲최근 무소속 야권통합추진회 의원들과 합세한 세력인 「새정치동지회」(대표 제정구), 한겨레사회연구소(이사장 예춘호) ▲백기완씨를 미는 민중정당추진위(약칭「민추」·의원장 정태윤), 「신당추진지역협의회」(약칭「신지협」·의장 이강철) 가 합의한 「신당추진전국협의회」 ▲ 「김대중대통령단일후보추대위」(약칭 김추)에 참여했던 문동환·이돈명·이문영씨 등이 만든 「범민주정치세력통합추진협의회」(약칭 통추)준비모임 등으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이밖에 「야권통합협상회의」를 제안한 구「군정종식·단일화쟁취 국민협의희」(약칭「국협」) 소속의 계훈제·박형규씨 등이 참여한 민주국민회의 결성준비위가 야권통합에 개입하고 있고, 새정치동지회에서 떨어져나간 김상철 변호사가 가칭 정의당을 만들었다.
한때 이들은 통합신당을 만들려다 각각 갈라섰다.
그중 가장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온 박찬종·조순형·홍사덕·이철 의원 등 야권통합추진회와 예춘활씨 등은 온건한 국민정당을 만든다는 데 합의했는데 그때까지 우선 민주·평민당과의 통합을 추진하기로 했다. 양쪽에서 10여명만 호응해오면 양당은 무너져 내린다는 것이다.
이들은 세대교체를 부르짖으며 은근히 두 김 퇴진을 주장하고 있는데 양당에서 참여의원들을 끌어들이려 백방으로 접촉중이지만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앞으로 여론이 야권의 단일화로 모아질 때 새로운 변수들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김추」(김대중지지세력) 를 제외한 재야세력이 양김퇴진을 주장하고 있고, 이런 주장이 학생·운동권에까지 번질 경우 보다 구체적인 압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거기다 총선 시기가 4월로 늦어지고 선거법이 1구1인제 등 야당의원들을 보다 압박하는 쪽으로 흐르게 되면 양당의 의원들이 다시 동요할 수도 있다.
결국 김영삼 총재 측이 주도하는 민주당중심의 현실적 야당통합방안과 김대중 총재 측의 대응수단, 그리고 명분에 입각한 신당파의 야당추진움직임 중 어느 쪽이 대세를 휘어잡을지에 따라 야권의 판도가 드러날 전망이다. <끝><고도원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