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춤엔 안무가 없습니다 … 영혼의 흐느낌뿐입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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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사진=김성룡 기자]

움찔하는 몸짓,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시선, 뒤엉키듯 팔을 이리저리 휘두르는 모습…. 과연 그의 몸놀림을 춤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런데 가슴 한구석 먹먹해져 오는 이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종천(41)씨. 그는 태어날 때부터 상체 왼쪽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 언어 장애도 있어 원활한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런 그가 지금 무용수로 거듭나고 있다. 벌써 3년째 정식 무용단에서 활약(?) 중이다.

과거 그가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기회는 기껏해야 일주일에 한 두차례 장애인 복지 시설에 나가는 게 전부였다. 변화가 생긴 건 2003년 8월이었다. '트러스트 무용단' 김형희 대표는 이렇게 회고한다. "무용이 꼭 학교에서 전공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라는 의문이 생길 때였죠. 어설프지만 진실한 몸짓이 감동을 더 주지 않을까 싶어 장애인과 한번 작업을 같이 하고 싶었습니다. 수소문 끝에 최씨가 '끼가 많다'란 얘기를 듣고 오디션을 보게 된 거죠."

오디션 날 트러스트 무용단원들은 심사위원 자격으로 최씨의 춤을 보았다. 사실 '장애인이 춤을 춰보았자 얼마나 추겠어'란 선입견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동작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김윤규(36)씨는 "팔을 쭉 뻗거나 다리를 치켜 들진 못했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보던 몸놀림하곤 전혀 달랐죠. 솔직히 소름이 끼쳤습니다"라고 전한다. 최씨는 만장일치로 단원으로 합류했다.

춤을 추려고 밖에 나가기 시작하자 최씨의 부모는 걱정이 컸다. "지금껏 사회 생활이라고 제대로 한 게 없는데 괜히 상처 받는다"며 연습장을 찾아 오기도 했다. 그러나 마흔살 가까이에 '춤맛'에 빠진 최씨의 고집을 돌릴 순 없었다.

최씨는 다른 단원들보다 30분 일찍 연습장에 나왔다. 단원들이 스트레칭을 할 때 그는 마룻바닥을 땀이 뒤범벅이 될 만큼 기어다니고 걸어다녔다. 그게 몸풀기였다. 딱히 안무가 주어지지 않은 채 그의 본능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연습이 진행됐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난 뒤에 탄생한 작품이 '데칼로그'였다. 김대표는 "공연날 관객들은 아무도 그가 장애인이라고 의심하지 않는 눈치였어요. 그냥 보통 무용수가 장애인 흉내를 무척 잘 내는 것으로 짐작한 거죠. 그러나 막상 마지막 무대 인사 때 그가 절뚝거리며 나오자 관객들은 어리둥절해하며 뒤늦게 기립 박수를 쳤어요"라고 말한다. 그 후 그는 해외 공연에도 참여하는 등 정식 무용단원으로 자기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매주 네 차례 실시되는 연습도 거의 빠지지 않고 있다. 성실한 덕분에 실력도 꽤 많이 늘었단다. 25일과 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해당화'란 작품은 그의 세 번째 출연작.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최씨는 "이렇게 춤을 추는 게 너무 좋다"라고 느릿느릿 대답했다. 꿈도 물어 보았다. "몸이 안 좋은 다른 사람들도 춤을 출 수 있었으면 좋겠다"란 대답이 돌아왔다. 어눌하지만 진실한 말이 가슴을 울려왔다. 투박하지만 절절함을 담은 그의 춤처럼. 02-879-0613

글=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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