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그램' 따라 춤추는 증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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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증시가 기계(프로그램 매매)에 따라 춤을 추고 있다. 기관투자가며 외국인이며 눈치만 보고 있는 가운데 증시의 주도 세력이 사라지면서 프로그램 매매에 휘둘려 지수가 급등락하는 장세가 연일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23일 코스피 지수는 전날보다 1.54% 오른 1361.23에 마감했다. 개인이 3000억 원이 넘는 '팔자'에 나섰지만 3777억원이 넘는 프로그램 매수세가 매물을 다 받아내고도 지수 상승을 이끌었다. 이에 앞서 22일에는 장 초반 10포인트가량 상승했던 주가가 프로그램 매물에 밀려 1시간여 만에 20포인트나 하락했다. 프로그램 매매의 변덕에 따라 증시가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형국이다.

선물이 현물 시장 쥐락펴락=프로그램 매매란 선물과 현물의 가격차가 벌어졌을 때 상대적으로 싼 쪽을 사고 비싼 쪽을 팔아 이득을 취하는 거래 기법이다. 주로 투신사 등 기관 거래에 이용되며 컴퓨터로 처리하기 때문에 프로그램 매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최근 프로그램 매매의 방향키는 외국인의 선물 매매가 쥐고 있다. 외국인이 선물을 사면 선물 가격이 비싸지면서 상대적으로 싸진 현물(주식)을 사려는 프로그램 매수세가 쏟아지는 식이다. 23일 외국인이 선물 시장에서 연중 최대규모인 7555계약을 순매수하자 3500억 원이 넘는 프로그램 매수세가 유입된 게 좋은 예다. 22일에는 반대로 6000계약에 달하는 외국인의 대규모 선물매도가 2800억여 원의 프로그램 매물을 불러냈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 연구원은 "시장을 이끌만한 주체가 없다 보니 꼬리(선물)가 몸통(현물)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며 "외국인의 '치고 빠지기'식 선물 단타 매매가 이어지면서 증시의 변동성은 계속 확대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프로그램 매매 장세 계속될 듯= 교보증권에 따르면 올 초 4~5% 수준에 불과했던 프로그램 매매의 비중은 최근 10%대에 육박했다. 최근 프로그램 매매와 코스피 지수간의 상관관계도 0.8~0.9(1이면 완전 동조) 까지 치솟은 상태다. 프로그램 매매의 영향력이 커진 탓에 프로그램 매매와 코스피 지수의 움직임이 비슷해졌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주가가 프로그램 매매에 휘둘리는 장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매수차익 잔액은 1조원 아래로 떨어진 반면 매도 차익 잔액은 2조 원을 넘어 앞으로 프로그램 매매는 '사자'쪽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교보증권 이우현 연구원은 "증시를 휘어잡을 뚜렷한 재료가 나타나지 않는 것이 문제"라며 "선물 만기가 돌아오는 다음달까지는 프로그램 매매를 비롯한 단기적인 수급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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