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통합 움직임 새 국면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그동안 여러 갈래로 산발적으로 추진되고 거론돼 오던 야권통합 움직임은 16일 나온 김대중씨의 조건부 2선 후퇴 선언등으로 새로 기세를 얻어 보다 활발한 움직임을 보일 전망이다.
김씨의 후퇴선언이 어떤 식으로 비화돼갈지 모르지만 양당 모두 동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런 방향으로 몰아가려는 힘이 강화될 전망이다.
김 총재의 조건부 또는 반 후퇴선언이 앞으로 어떤 모양을 갖춰가며 현실정치로 나타날 것인가는 두고볼 일이나 양 김씨를 두 기둥으로 하여 엮어왔던 근 20여년의 야권체제에 큰 변화가 오고 있음을 예고해주고 있다. 김 총재의 이날 선언이 나온 배경은 소속의원들의 위기의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의원들은 대통령선거에서 3등을 했고 그나마 표가 한 지역에 몰린데다 선거후의 대응이 나빠 이런 상황으로는 도저히 총선에 나갈 수 없다는 절박감을 느끼고 있다.
거기에다 민주당의 김영삼 총재가 임시전당대회에서 재추대, 총선 참여결정, 노·김 회담등 재빠른 현실 적응을 해나가는데 비해 평민당은 늘 한발 뒤져 따라가는 형세였다.
호남지역의 일부까지를 포함해 중부권의 모든 의원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당의 이미지를 갖고는 참패할 수밖에 없다는 비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의원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야권통합은 불가피하며 통합을 위해서는 양 김씨가 후선으로 물러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 공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불만은 김 총재의 영향력이 작게 미치는 중부 이북권 지역 의원과 당직자들 입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해 마침내는 유제연·김현수의원 등의 당직사퇴라는 행동으로까지 번졌다.
이와 함께 김성식·장기욱·김현수의원등은 개별탈당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나돌아 이를 만류·설득하는 과정에서 이런 식으로는 당을 더 이상 끌고 갈 수 없다는 절박한 인식이 이용배의원등 부총재급에 의해 김 총재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인다.
김 총재 자신은 개별적으로 의원들을 접촉, 『소선거구제가 되면 평민당이 최소 90여석을 확보해 제1야당이 자신 있다』는 등으로 설득했으나 일부의원이 민주당의 흡입력에 끌려 들어갈 위험성까지 보이자 수습을 위한 중대결단이 불가피함을 감지했던 것 같다.
일부 측근들은 김 총재에게 『한 두명씩 탈당이 시작되면 과거 민한당 꼴이 될 우려도 있다』며 결심을 촉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의 이 같은 결심이 단지 흔들리는 당을 수습하기 위한 잠시의 계책인지 여부는 알길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양 김이라는 존재 때문에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었던 양당의 통합운동은 이번 선언이 촉매가 되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선언은 민주당의 김 총재 거취에도 영향을 줄 것이 분명하다.
김 총재는 당대당 통합이란 있을 수 없고 분당이전의 원상회복만 받아들일 수 있다고 하나 당내 일부 영입의원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양 김 퇴진론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l6일 당사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평민·민주·재야가 통합하는 이른바 「3군대통합」이 이루어지면 자신은 2선으로 물러나 백의종군하겠다』고 밝힌 후 다음과 같이 일문일답을 가졌다.
-「3군대통합이 이루어지면」이란 전제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 「2선으로 물러나겠다」라는 입장은 달라지는 것인가.『야권통합에 성실한 태도를 갖겠다는 사람에게 안됐을 경우의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고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은가.』
-「2선 후퇴」는 무슨 뜻인가.『백의종군한다는 말이다.』
-「2선 후퇴」는 김영삼 민주당총재도 포함돼야 한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되는가.
『남의 일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으며 나의 입장 천명에 있어 「조건」은 없다.』
-야권통합을 위해 김 총재의 퇴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으면 따를 것인가.
『그것은 통합에 임하는 성실한 태도가 아니다. 통합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통합이 되면 백의종군하겠다는 뜻을 충분히 새겨주기 바란다.』
-그러면 통합 때까지 평민당의 현 체제는 그대로 유지되는가.
『그렇다.』
-통합을 위해 실질적 대표자인 김영삼 총재와 이돈명·문익환씨등 재야대표가 참석하는 3자회담의 필요성은 없다고 보는가.
『필요한 단계가 오면 할 수 있다.』
-갈라진 재야가 「1자」가 될 수 있는가.
『재야의 단일화작업이 병행될 것으로 보며 단일화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군소정당 까지 다 재야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국민의 상식으로 통합의 범위를 생각하면 된다.』
-어제(l5일)구성된 「범 민주정치세력」의 참가인물들을 보고 민주당쪽에선 「친 평민당 계」라는 평가가 있었는데….
『나는 야권통합에 주도권을 잡거나 당수 (총재를 의미)를 할 욕심이 없다는 의지를 밝혔다. 친 평민당계라고 하나 재야의 「친 민주당계」가 있으면 그런 분도 영입해서 야권통합을 이루면 되지 않겠나.』
-국회의원에 입후보 할 생각인가.
『최종적으로 당이 결정할 문제이나 개인적으로는 나갈 생각이 없다냄
○…그동안 야권통합 움직임은 크게 봐서△민주·평민 양당의원△야권원로들을 비롯한 구야인사 △5인 무소속의원과 신당 추진세력 등 3, 4갈래로 진행돼 왔었다. 이중에서도 가장 현실감 있게 통합문제를 논의한 폭이 평민당의 현역의원들이었다.
이중재· 양순직· 노승환· 유제연의원등 전부총재들과 김현수· 장기욱· 김성식의원 등이 야권통합을 의원총회등 여러 자리에서 강력히 주장하고 이에 대해 민주당의 일부의원들이 맞장구를 쳐 양측간에는 한때 상당한 의견 접근을 보았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 일부 핵심 당직자들도 두 김 퇴진과 신당결성을 임밖에 내기도 했다.
평민당의 통합과 의원들 민주당의 김수한· 송원영· 이영준·김형광의원등과 접촉,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고, 여기에는 서명운동도 포함됐었다는 얘기.
김성식의원등은 평민당 가지고는 선거를 못한다고 당을 떠날 뜻을 공공연히 밝혔고 장기욱의원등은 김대중 총재의 사퇴를 요구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민주당의원들에게 서명에 동참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원들은 선거구에 대한 당론이 1구2인제로 돌아서 버린 후 통합론에는 발을 빼는 인상으로 오히려 민주당에 들어오라는 여유까지 보였다.
그러나 야권전체가 「통합」 물결에 출렁거리게 되면 의원들의 속마음은 또 어떻게 돌아갈지 미지수다.
○…박찬종의원 등 무소속 5명은 한때 재야신당추진세력과 신당을 만들기로 거의 합의했었다. 신당창당의 3원칙이 △두 김 퇴진 △범 야 통합 △당내민주화였듯이 두 김 퇴진을 전제한 야권통합을 목표로 한 것.
그러나 재야신당세력이 구 정치인보다 새로운 정치세력이 중심이 돼야함을 강력히 요구해 5인 의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서로 추진방향이 갈라졌다.
5인 의원들은 야당통합 추진회를 구성해 선 통합, 후 창당으로 나가고 재야 신당파들은 독자 창당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5인 의원쪽은 민주·평민 양당에 재야를 포함시키는 3자 통합쪽이고 신당파는 새 정치 세력중심에 야당의원들의 가세를 주장하는 셈인데 이들 모두 「두 김 퇴진」을 공동목표로 하고 있어 양 김에 대한 겨냥은 마찬가지다.
○…군소야당 당수들 및 구 야당원로들도 두 김씨 퇴진과 야권통합을 뒤에서 추진중이다. 정성태·이종남씨등은 이만섭 국민당총재· 유치송 민한당총재등과 접촉을 시도했는데 야권통합추진 운영위를 만들어 민주·평민 양당과 재야를 통합한다는 것.
서로 접촉을 가진 이만섭· 유치송 두 총재는 모두 『야당통합이 이뤄진다면 당 이름을 바꾸든지 해서 참여하겠다』고 적극적이다.
이들은 박찬종의원등 무소속 5인 의원을 끌어들이려고 접촉을 벌였으나 별 성과를 못 거뒀고 무소속 출마태세인 고흥문씨와도 만나 이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두 김씨는 야당통합을 위해 물러서고 야권의 「총 통합」이 이뤄져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으나 호응이 미미한 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