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대학생 칼럼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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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최창원 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

최창원 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

“꿈은 돈 주고 살 수 없어, 큰 꿈을 꿔라.”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걸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알 수 없는 거부감이 들었다. 너무 일찍 거짓말인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은 교실 뒷벽 게시판을 예쁘게 꾸미기를 좋아하셨다. 하루는 우리에게 꿈을 적어내라고 했다. 친구들은 ‘변호사’ ‘대통령’ ‘교사’ 등 되고 싶은 걸 얘기했지만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적어 제출했다. 뭔가 직업을 적어야 할 것 같은데, 되고 싶은 게 없었다. 그렇다고 거짓말하기는 싫었다.

종례가 끝나자 선생님은 나를 불렀다. 게시판에 붙일 거니까, 제대로 적으라고 혼을 냈다. 적을 게 없어 쭈뼛대자 선생님은 변호사라도 적으라 했다. 그날부터 게시판의 내 이름 옆에 변호사라는 직업이 붙여졌다. 가까운 중학교에 진학하는 게 꿈이라고 했던 친구도 선생님께 혼이 나고 꿈을 바꿨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시간이 흘러, 술 마시며 동창회를 하는 나이가 됐다. 각자 어떻게 살았는지 얘기하다 꿈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다들 ‘건물주’ ‘로또 당첨’ 등 돈을 많이 버는 게 꿈이라 했다. 한 친구가 내 꿈을 물었다. 난 그때처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옆에 있는 친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다. 내 꿈은 농담이 됐다.

집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에 앉아 있었다. 눈앞에 ‘○○토익이 당신의 꿈을 이뤄드립니다’라는 광고가 붙어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멍하게 한참을 바라봤다. 토익이 이뤄줄 수 있는 꿈은 어떤 걸까. 높은 점수, 좋은 직장, 좋은 직업? 선생님이 게시판에 붙여줄 수 있는 꿈은 왜 변호사였을까. 왜 친구들은 내 꿈이 장난처럼 들렸을까, 왜 건물주가 꿈이 된 걸까.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현실적인 목표들인데 말이다.

아직도 큰 꿈을 꾸라고, 꿈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라 말하는 이들을 본다. 하지만 그 꿈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겉모습과 돈을 의미하는 거라면 그건 틀렸다. 내가 살아온 짧은 인생은, 그 꿈이 사실은 획일화된 경쟁논리였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대책 없는 꿈 얘긴 이제 그만해주길 바란다.

최창원 단국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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