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찬 외교-개방의 결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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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소련 등 동구권의 서울올림픽참가 결정은 81년 바덴바덴 국제 올림픽위원회총회 이후 지금까지 한국정부의 대 동구권 올림픽 문호개방정책 확인의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바덴바덴회의에서 서울올림픽유치 신청서를 내면서 대통령의 서명이 든 모든 IOC회원국의 한국방문 보장을 천명했었다.
이 같은 한국정부의 비수 교국에 대한 유연한 자세는 84로스앤젤레스 올림픽까지 별다른 장애 없이 한국스포츠외교의 주종을 이루어 왔으나 이해 5월 소련이 LA대회 불참을 선언하면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한국의 줄기찬 외교와 IOC등의 긍정적인 반응은 85년4월 서울에서 열린 ANOC총회에서 커다란 진전을 보여 동구권 대부분이 서울대회 참가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ANOC 서울 총회와 아울러 IOC가 주관하는 남북한체육회담과 이 회담을 통한 북한측의 무리한 요구가 동구권의 서울 대회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의 변화에 크게 기여했다.
서울ANOC 대회 후 동구권의 서울대회에 대한 결정적인 반응은 85년 6월의 동베를린IOC총회 후 동독「호네커」 당 서기장과 「에발트」 체육상의 서울대회참가공식시사로 나타났다.
특히 지난해5월 이스탄불 IOC총회에서 한국은 비수교국이 서울대회에 선수단을 보낼 경우 자국기의 서울공항이착륙 허용을 보장, 비수교국 특히 공산권국가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데 성공했었다.
동독이 서울 올림픽 참가와 관련, 동구권을 선도하면서 85년이래 소련 등 동구권국가가 서울에서 열리는 각종 국제스포츠대회에 참가함으로써 이들 비수교국들의 서울대회에 대한 긍정적자세가 구체화됐다.
이 같은 한국 측에 유리한 분위기 조성은 87년 소련·동독·불가리아·헝가리·폴란드 등의 공식 NOC 대표단이 서울을 방문하고 루마니아의 「시페르코」 IOC위원이 수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서울대회참가발표는 없었으나 사실상 참가를 전 세계에 확인해주었다.
동구권 NOC대표단은 서울방문에서 각각 나라별로 관심의 특색을 보이며 구체적인 사항을 서울올림픽대회조직위와 상의하기 시작했다.
소련은 선수단의 수송문제와 관련, 선박 및 항공기에 의한 직접수송을 제의했고 한국 측은 이를 수락했다.
또 동독은 서울대회참가시 공산국이고 비수교국인 동독의 정식 국호·국기·국가의 사용을 타진, 이에 대한 보장을 받고 참가를 결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동독은 특히 잠실 주경기강의5·10·20·30m상공의 풍속을 묻고 미사리 조정경기장의 바람과 파고 등 예기치 못한 사항을 묻는 등 이때 이미 확고한 참가의사를 간접적으로 밝혔었다.
소련·동독과 달리 불가리아는 92년 소피아 동계올림픽 유치 노력과 관련, 서울대회 참가를 이미 기정사실화하고 있었으며 헝가리는 서울올림픽에서 체조·펜싱 경기강의 전광스코어보드 설치권을 따내면서 이미 서울참가를 기정 사실화했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의 경우 이미 공식대표단 및 책임자의 수 차례에 걸친 서울파견으로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리안·링케」 폴란드 체육상은 ANOC 사무 총장자격으로 여러 차례에 걸친 서울방문을 통해 서울올림픽에 대한 호감을 갖기 시작했고 루마니아의 「시페르코」 역시 한국이 올림픽개최에 문제가 없음을 수 차례에 걸친 서울방문에서 확인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지난해 9월 소련 수쿠미에서 열렸던 사회주의국가 체육상회의는 지금까지의 서울과의 접촉과 사전조사결과에 따라 서울 대회참가를 내부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쿠미 회의는 공식적으로는 북한의 입장을 지지했었으나 87년12월과 88년1월17일 사이에 IOC의 서울 올림픽참가 초청에 대해 참가를 모두 공식통보하기로 결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참가결정은 동독과 헝가리가 사회주의 국가들 가운데 IOC통보 선두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을 했다는 것과도 연결되고 있다.
동독은 지난해 12월21일 국가 체육위원회가 서울대회참가를 결정하고 사회주의국가들 가운데 가장 먼저통보를 하기로 했으나 이를 눈치챈 헝가리가 우편대신 팩시밀리로 IOC에 통보, 동독보다 3시간 앞서 등록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진창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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