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이트 꿰매준 덕에 동메달" 이강석, 수선공 찾아가 인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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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따낸 이강석(왼쪽)이 경기 직전 스케이트를 고쳐준 스키토를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토리노=김진경 일간스포츠 기자]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동메달을 땄습니다."(이강석)

"사소한 것 때문에 게임을 망쳤다면 정말 네 가슴이 아팠을 것이다. 좋은 일을 하게 돼 기쁘다.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도와줬을 것이다."(스키토)

21일(한국시간) 이탈리아 토리노시내 링고토의 작은 쇼핑몰에서 '우정의 꽃'이 피었다. 토리노 올림픽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500m에서 동메달을 딴 이강석(21.한국체대)과 이탈리아인 구두수선공이 만든 '올림픽의 꽃'이었다. 이강석은 이날 자신의 망가진 스케이트를 고쳐 준 수선공(본지 2월 15일자 20면)의 가게를 찾았다. 고마움을 전하려는 그의 손에는 티셔츠와 넥타이가 들려 있었다. 수선공은 '라바세코'라는 열쇠 및 구두수리점을 6년째 운영하고 있는 조르조 스키토(50). 이강석이 "스케이트를 잘 고쳐줘 정말 고마웠다"면서 선물을 건네자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면서 "이렇게 찾아와 주니 정말 기분 좋다"고 이강석의 손을 잡았다.

스키토는 당시 상황을 아주 자세하게 설명했다. "이탈리아 말을 할 줄 모르는 한국인이 찾아와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스케이트를 내밀었고, 손으로 가리키는 부분을 보니 스케이트 끈을 묶는 구멍이 찢어져 있었다"고 했다.

스키토는 일단 가죽을 대고 접착제로 붙였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직접 차를 몰고 잘 아는 재봉사를 찾아가 바느질로 튼튼하게 꿰매줬다. 경기가 시작되기 불과 한 시간 전에 도착한 스케이트를 신고 질주한 이강석은 14년 만에 한국 스피드 스케이트에 메달을 안겨줬다.

이강석은 "꼭 1년 전 이곳에서 열렸던 월드컵대회 때 똑같이 스케이트가 찢어져 8위로 밀려난 기억이 되살아나 '이번 올림픽도 틀렸구나'하고 절망했는데 정말 극적으로 고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고 했다.

스키토는 "스포츠를 좋아한다. 특히 축구를 즐긴다"고 했다. 당연히 2002 한.일 월드컵으로 화제가 옮아갔다. 스키토는 "사실 한국은 잘 몰랐다. 하지만 2002 월드컵 때 알게 됐다. 16강전에서 이탈리아가 한국에 진 일은 잊기 어렵다"며 눈을 흘겼다. 이강석이 "다음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고 찾아오겠다"고 작별인사를 했고, 스키토는 "다음 올림픽 때는 스케이트가 찢어지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배웅했다.

토리노=성백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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