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출신 '회장'들이 0.01초 승부 묘미를 알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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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사이클.쇼트트랙 등 기록경기에서는 0.01초나 0.001초 차로 신기록이나 순위가 결정된다. 특히 단거리 종목에서는 여러 명이 동시에 골인해 사진 판독으로도 순위를 정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그래도 순위를 매긴다. 그게 바로 스포츠다." (황규훈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

김정길 대한체육회장과 신상우 한국야구위원회(KBO) 총재가 경쟁적으로 '국가대표 선수들에 대한 특혜를 확대하겠다'는 약속을 쏟아냈다.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겨울올림픽을 참관하고 있는 김정길 회장은 20일 "메달 획득에 실패했지만 세계 정상권 기량을 발휘한 선수에게도 연금 혜택이 돌아가도록 관련 정책과 규정을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김 회장은 "스피드 스케이팅 남자 1000m에서 0.02초 차로 동메달을 놓친 이규혁(서울시청)과 여자 500m에서 5위에 입상한 이상화(휘경여고)는 메달을 딴 것과 마찬가지"라면서 "27일 귀국하는 즉시 관련 기관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야구 국가대항전인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선수단 격려차 일본 후쿠오카를 찾은 신상우 총재도 이날 선수단과의 회식 자리에서 "여러분의 사기 진작과 동기 부여를 위해 병역특례법 신설을 모색하고 있다. 국방부 장관, 문화관광부 장관 등을 만나 좋은 성적을 올릴 경우 병역혜택을 주자고 제의했다. 실무자로부터 4강 이상이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혜 확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조영호 한양대 체육대학장은 "현실적인 방안도 아니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스포츠 정신 자체를 훼손할 수도 있는 즉흥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현실화하려면 많은 단계와 검증을 거쳐야 하는데도 언론과 선수들에게 먼저 말한 것은 인기 정책이라는 주장이다. 조 학장은 "연금과 병역 혜택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야 하는데 이를 무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의 세계에서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감동을 준다. 그러나 스포츠는 승부의 세계다. 축구에서 89분을 이기고 있다가도 1분을 견디지 못해 지는 경우도 있다. 열세에 놓여 있다가도 막판에 극적인 역전을 하는 것도 스포츠가 주는 묘미다. 선수들은 0.01초를 단축하기 위해 땀을 쏟고, 온갖 고통을 견딘다.

종목별 특성상 '아깝다'는 기준을 정하는 것도 어려운 문제다. 지금까지 메달 문턱에서 아깝게 분루를 삼킨 선수도 한둘이 아니다. 이상철 한국체대 교수는 "취지는 알겠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국제대회도 여러 등급이 있고, 기록 종목과 투기 종목, 단체 종목과 개인 종목이 있다. 이런 여러 차이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한 발언인지 알 수 없다. 개인적으로 포상금을 주는 것은 관계 없지만 정말 연금 규정이 바뀐다면 더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걱정했다.

신동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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