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도둑」된「바늘도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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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조폐공사 현금 수송차를 털려고 했어요. 어차피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면 신변 보호를 위해서도 진짜 총이 있어야 할 것 같아 파출소 무기고를 털기로 했습니다.』
4일 서울 강남경찰서에 구속된 서울 동부경찰서 대공원파출소 총기탈취미수사건 범인 5명중 1명은 올해 성년이 되는 20세, 4명은 10대. 전혀 죄의식이 없는 태연한 표정으로 범행동기를 털어놓는다.
4명의 10대중 조모군(18)은 모공고 3년인 학생. 이들의 범죄행각은「바늘도둑이 소도둑 된」과정 그대로였다.
부모가 모두 막노동을 하는 어려운 가정환경에서 무단 가출한 이들은 6개월여 무허가 하숙집을 전전, 10대 소녀들과 집단혼숙을 하며 처음에는 하숙비와 유흥비마련을 위해 과도를 들고 강도 짓을 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28일 서울역삼동 전자오락실을 털 때 우연히 공기권총을 뺏은 뒤로는 「공기권총강도」로 돌변했다.
『공기총을 사용하니까 칼을 쓸 때 보다 효과도 있고 재미도 있던데요.』
서울 청담동 목영규외과에 공기권총을 들고 들어가 2천만원 어치의 금품을 털어 재미를 보자 명보극장 맞은편 명보 총포상에 들어가 공기총2정과 납탄 4백 여발을 훔쳐 장비를 「보강」했다.
그리고는 조폐공사 현금 수송차량 탈취라는 기상천외한 범행을 위해 진짜 총을 얻으려고 파출소를 습격하기에 이르렀다.
『TV영화를 보고 힌트를 얻어 상봉터미널 앞 가게에서 스키용 방한 마스크를 사 복면으로 사용했지요』
어떻게 보면 아직 철없는 어린아이들인 이들은 사건발생 후 일부신문에서 범인은 시국불만자인 것처럼 보도되자『우리가 왜 시국불만자냐. 우리는 강도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대공원파출소에 보내 수사경찰들의 임을 딱 벌어지게 했다.
『어차피 잡힐줄 알았어요. 도망가면 뭘해요. 고생 만하지.』고개를 빳빳이 든 채 당돌하게 대꾸하는 일그러진 10대들의 얼굴에서 병든 사회의 단면을 느껴야만 했다.

<손장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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