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실탄총을 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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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경찰이 권총을 차면 범죄자는 기관총으로 중무장한다」는 영국경찰의 경구 두고 두고 음미해 볼만하다. 범죄용구의 상승논리를 경고한 말이다. 그래서 영국경찰은 지금도 곤봉만 차고 다닌다. 그 나라의 범죄꾼이 유별나게 온순해서도 아니고 그나라 국민이 범죄자에게 관대해서도 아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 떼강노가 들끓자 치안본부가 세밑 강도 소탕령과 함께 2만5천여 외근경찰에게 총과 실탄을 지급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발포를 하도록 해 안도에 앞서 우려스럽다. 오죽해서 이런 충격적 조치를 취해야 했고 국민감정 또한 이해할만도 하지만 총기가 아니면 범죄를 차단할 수 없기에 이른 무기력한 경찰과 병든 우리사회를 보는 것 같아 착잡하기 까지하다.
범죄를 저지른 자는 언젠가는 반드시 잡히고야 만다는 인식이 뿌리를 박고 있었으면 총기 따위가 애당초부터 등장할 필요가 없늘것이다. 경찰관이 입는 제복 그자체가 범죄꾼들에게 하나의 큰 위협이며 외포의 대상이어야 한다. 제복이 상징하는 권위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위하적 효능도 발휘 못하게 되었으니 갈때까지 간 느낌이다.
세모의 부산한 거리마다 집총한 경찰이 서있는 모습은 살풍경하고 살벌한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더구나 전에도 왕왕 있었듯이 경찰의 총기 과잉사용과 뒷덜미 사격, 그리고 이에 맞설 범죄꾼들의 대응을 생각하면 매우 걱정스럽다.
가정파괴범이나 흉악범을 없앤다고 감호제도를 신설하고 극형을 내리자 범죄가 근절되기는 커녕 더욱 흉악해졌다.
잡히면 죽는다는 심리 때문에 안죽여도 될 사람을 살해하거나 신고를 못하게 부녀자를 욕보이는 사례가 빈발해져 범죄의 흉포화를 촉진시킨 면도 없지 않다.
물론 극악 범죄의 유행은 세태와도 유관하다. 인명경시풍조와 땀흘리지 않고 목돈을 쥐려는 한탕주의, 상대적 빈곤감과 극에 이른 사치와 향락의 사회적 병폐와도 깊은 함수관계가 있다.
따라서 요즘 기승을 부리는 흉악범죄의 급증을 두고 경찰만을 나무랄 수 없다. 사회병리 현상과 나무만 보고 숲은 못보는 형사정책, 빈곤한 행형및 사회정책등이 복합해서 빚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경찰을 두둔하는 데는 주저하게 된다. 누누이 지적했지만 경찰의 인원과 예산은 10년전에 비해 놀랄만큼 늘었다. 정부 전체예산의 17분의1이나 쓰는 경찰의 예산은 자그마치 10배, 인원은 2배 이상 늘었다. 경찰관 수는 선진국 수준보다 앞서있다.
또 다른 나라에 없는 방범대원까지 확보하고 있으며 아파트와 고급주택지에는 주민이 경비를 부담해가며 지역방범체제까지 갖추어 경찰의 일손을 크게 덜고 있다. 그렇다면 범죄는 10년전 보다 격감했어야 마땅한데도 오히려 격증 추세다. 경찰이 얼마나 한눈을 팔고 있는가를 삼척동자가 아니더라도 당장 알수 있다. 오늘날 처럼 경찰의 직업윤리가 마비되고 사명감과 끈질긴 경찰근성이 실종된 적도 없을성 싶다.
경찰의 정책기관이라할 치안본부가 날로 늘어나는 신종범죄나 흉악범죄, 범인의 연소화 현상등을 분석, 연구하고 이에 대처하는 치안정책 하나 개발했다는 소리도 못들었다. 집총따위는 1회성 캄프르주사와도 같은 임시방편의 충격요법이다. 얄팍한 대중요법만 쓰려하지 말고 보다 근원적이고 항구적인 대책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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