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바를 正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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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바를 '정(正)'은 '一'과 '止'로 이뤄진 한자다. 옥편에서는 '그칠 止'부수에서 찾아야 한다. 유래에 대해선 몇가지 설이 있다.

'一'은 하늘, '止'는 걸음이라고 해석되므로 '하늘의 움직임처럼 정확하다'는 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또 '선(一)'과 '멈춘다(止)'의 합자로 '일정한 한계를 넘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왔다고도 한다.

더 재미있는 해석도 있다. '正'의 '一'은 원래 성곽에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의미의 '口'이 변형됐다고 한다. 이때 '正'은 성읍을 향해 간다는 뜻, 즉 '정복'이나 '진격'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정복에 의한 지배가 정당시되던 고대 중국을 상상해보면 '正'이 '정복'에서 '바름'으로 변천했다는 설이 그럴 듯하게 들리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바름', 즉 정의(正義)에 대한 해석이 분분했다. 플라톤의 '국가론' 초반부에는 소피스트(궤변론자)들이 정의의 개념을 놓고 소크라테스와 논쟁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 소피스트가 소크라테스에게 판판이 나가떨어졌지만 켈세돈 출신의 트라시마쿠스는 집요하게 맞붙었다.

트라시마쿠스는 한마디로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무엇이 옳은지를 규정하는 법률은 어디서나 지배층이 자신을 위해 만든다, 따라서 정의는 곧 권력을 가진 편의 이익이 된다는 논리다. 윤리적 차원에서 정의를 설파한 소크라테스에 대해 현실론으로 맞선 것이다.

물론 플라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따르지만 트라시마쿠스가 완패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마치 한쪽은 "비가 온다"(현실론)고 하고 다른 한쪽은 "비가 와야 한다"(규범론)는 식이니 누가 더 옳은지 판정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트라시마쿠스와 같은 현실론은 르네상스 시대의 니콜로 마키아벨리(1469~1527)로 이어진다. 그는 '군주론'을 통해 도덕과 정치를 확실하게 구별하고 강력한 전제정치를 이상형으로 제시했다. 결국 '힘 센 놈이 최고'라는 단순한 발상이 포장과 내용을 달리 하며 면면히 내려온 셈이다.

진보와 보수, 또는 노(勞)와 사(使)로 갈려 서로 자기가 '正'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이들이 실력행사를 불사하려는 것은 '正'의 뜻을 정복이나 강자의 이익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일까.

남윤호 정책기획부 차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