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관계자 “국회가 법 개정 안 해주면 소장 인선 안 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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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헌법재판소의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한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재판관 8인체제 방치에도 우려

헌재 관계자는 “대통령의 권한은 헌재가 관여할 수는 없는 부분”이라고 말을 아꼈다. 그러나 헌재 안팎에서는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헌재소장의 임기 문제가 해소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헌법기관의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된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교차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결정이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에 힘을 실어주면서 신임 소장의 6년 임기를 확보하게 할 수 있는 포석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그동안 새로운 소장 후보자 지명 여부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권한대행 체제도 안착하지 못했다. 김 소장 대행이 실질적인 소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장 임기를 6년으로 정하는 법률 개정이 이뤄진 뒤에 소장 후보를 지명해야 임기 논란을 피할 수 있고 안정적인 헌재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헌법기관이 정치권에 휘둘리는 상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헌재의 한 관계자는 “국회가 법을 개정해 줄 때까지 대행 체제로 가겠다는 게 헌법기관에 대한 예의냐. 국회가 법 개정 안 해주면 소장 인선 안 하겠다는 것인지 착잡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정감사를 앞두고 헌재의 입장만 곤란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고도 했다.

재판관 8인 체제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달 1일 이유정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사퇴한 뒤 새 후보자 지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헌재 연구관은 “헌재의 권위를 바로 세우려면 비어 있는 재판관 인선을 마무리하는 게 급선무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임명 동의 절차가 필요 없는 헌법재판관 임명을 통해 불안정 체제를 해결하고 국회가 입법 미비 상태를 해소해 줄 때까지 권한대행 체제를 유지한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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