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언론, 개헌안 마련 지시한 고이즈미 비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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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일본 총리가 자민당에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 주요 일본 신문들이 27일 "정치적 속셈으로 경솔하게 행동했다"는 비판조의 사설을 게재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다음달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국회의원.당원의 표를 얻기 위한 전략이란 분석이 자민당 안팎에 있는데, 너무 무책임한 행동이다.

총리는 개헌 여론이 높다고 했지만 정치가 바뀌기를 바라는 의견도 많다. 경제 회복이 중요할 때 국론을 이분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또 "(총리는 2년 전 자민당 총재 선거 당시) 총리 공선제.자민당 사전 심사제도 폐지의 필요성만 이야기했지 열성적으로 실현하려고 했는지 의문"이라며 고이즈미 총리가 정치적으로 무게가 실리지 않은 발언만 남발한다는 식으로 꼬집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총재 선거에서는 구심력을 한층 강화하고, 중의원 선거에선 개헌에 대해 내부 의견이 엇갈려 있는 민주당에 쐐기를 박으려는 정치적 계산이란 지적도 있다"며 "헌법이 개정되면 자위대가 이라크 전쟁에 참여하게 되는데 국민의 60% 이상이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에 반대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세계가 크게 변하는 시대일수록 지도자는 더욱 굳굳하게 국가의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데, 총리의 자세가 매우 가볍다"고 지적했다.

도쿄(東京)신문은 "총리 재선 전략이라면 동기가 불순하고 경솔하다"며 "'책사(策士)는 책(策.술책)에 빠진다'는 말이 있는데, 무책임한 개헌론 제기로 현재 총재 선거에서 지키고 있는 우위가 역전될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간자키 다케노리(神崎武法)당수도 26일 "국회 헌법조사회가 개헌 여부를 조사하고 있으므로 개헌을 전제로 한 논의나 국민투표법안 마련에 신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간 나오토(菅直人) 민주당 대표는 "총재 선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이용하려는 속보이는 속임수"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보수적인 요미우리(讀賣).산케이(産經)신문은 환영한다는 뜻을 밝히고 구체적인 개헌 작업 일정을 밝히라고 요청했다.

한편 고이즈미 총리는 26일 "전투력이 있는 자위대가 정말로 군대가 아니라고 할 수 있느냐.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다"며 군대 보유.전쟁을 금지한 제9조와 제43조(국회 구성), 제89조(공적자금 사학 지원) 등 3개 조항을 개정 대상으로 지적했다.

자민당에선 야마사키 다쿠(山崎拓)간사장 등이 다음달 총재 선거에서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세우자고 나섰고, 아소 다로(麻生太郞)정조회장은 고이즈미의 발언을 지지하는 등 헌법 개정이 본격적으로 공론화되고 있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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