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지방 족쇄 풀어야 국민소득 3만 달러 뚫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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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06년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진입했으나 11년이나 지나도록 선진국 문턱이라 할 수 있는 3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추세라면 2020년에나 3만 달러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선진국이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에 진입하는 데 평균 8.2년 걸린 것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긴 셈이다.

스위스는 지방 경쟁이 혁신 촉진해 #국가경쟁력 1위에 소득 8만 달러 #한국은 11년째 3만 달러 진입 못해 #지방분권 개헌으로 새 활력 찾아야

세계적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001년 6월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위기를 넘어: 21세기 한국의 비전’이라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효율적으로 작동한 중앙집권적 국가운영체제가 지식정보사회에서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경제 발전을 위해 정부 체제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제안했다. 놀랍게도 토플러는 『불황을 넘어』라는 저서에서, 우리가 지방분권 국가로 생각해 온 미국도 불황을 극복하고 경제적 번영을 지속하려면 연방정부의 권력을 과감하게 지방정부로 넘겨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가경제시대를 넘어 지방경제시대가 도래했다는 논거였다.

절대빈곤을 해결하기 위해 산업화를 추구하던 시기에 대한민국은 후발 주자로서 선진국의 발전 모델을 답습하는 것이 정답이었다. 중앙정부의 엘리트 관료가 발전 방안을 기획하고 실천 매뉴얼을 만들어 전 국민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도록 강제하는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가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지식정보사회에 접어들자 이러한 국가운영체제가 오히려 지방과 국가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정답 없는 시대를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 스스로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해야 한다. 실험에는 위험이 수반된다. 국가가 실험을 주도하다 실패하면 국가 전체가 위기에 빠진다. 위험을 분산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이 혁신 실험실이 되어야 한다.

시론 삽화

시론 삽화

국가경쟁력 세계 1위에 단골로 오르고 국민소득이 8만 달러에 달하는 스위스에서 이 나라 원로 경제학자 르네 프라이(René Frey) 교수에게 “스위스가 이토록 잘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물은 적이 있다. 그의 반문은 이러했다. “스위스에는 2300개의 지방정부가 잘살기 위한 경쟁을 한다. 경쟁에 이기기 위해서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이런 나라가 못살면 이상하지 않느냐?” 고도의 지방분권체제가 스위스 경제에 혁신 동력을 제공하는 성장 엔진이다.

세계화 시대에는 국가와 국가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지방과 지방이 국경을 넘어 경쟁한다. 기업을 유치해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고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지방끼리 사활을 걸고 경쟁한다. 다른 나라의 지방들은 기업을 유치하는 데 유리하도록 스스로 법률을 제정해 세금을 결정하고, 교육·부동산·환경·치안·노사관계를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데 비해 우리의 지방은 결정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스위스에는 추크(Zug) 같은 시골 지역에도 세계적 기업들이 찾아와 일자리를 제공하고 지역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우리는 지방마다 국가산업단지를 만들어 놓고 신발이 닳도록 기업을 찾아다녀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의 지방은 법률 제정권이 없어 기업 유치에 필요한 조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은 지방이 스스로 지역 발전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손발을 묶어 놓고 있다. 중앙정부는 과부하로 기능 마비에 빠져 있다. 지방정부도 중앙정부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심각한 한국병이다.

지방정부가 중앙정부에 애걸해 법령을 개정하는 등 기업 유치에 필요한 조건을 어렵게 마련하고 나면 그 기업은 이미 다른 나라로 떠나고 없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는커녕 국내 기업마저 다른 나라로 빠져나간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국내 기업의 해외 투자는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보다 3배 가까이 되었다.

국회가 법률 제정권을 독점하고 있다 보니 좋은 법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국회가 만든 법률은 어느 지방에도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독점기업처럼 국회의 법률 독점은 입법의 품질을 하락시킨다. 우리의 지방들이 외국의 지방들과 경쟁해 기업을 유치해 일자리를 만들고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헌법을 개정해 지방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도록 손발을 풀어 주어야 한다. 지방마다 지역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 구상을 자기 책임으로 실현할 수 있도록 지방정부에도 법률 제정권을 주어야 한다. 그러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지방정부 상호 간에 치열한 입법 경쟁을 통해 창조적 혁신이 아래로부터 일어날 것이다. 대한민국이 만성적인 경제 불황에서 탈출해 재도약하기 위해서는 지방분권 개헌으로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 한다.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