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와 중기] “화재로 몽땅 탄 공장 1년 만에 3배로 재건, 4년 뒤 세계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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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장승국 비츠로셀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군자동 비츠로셀 서울 사무소에서 사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비츠로셀은 화재로 공장이 모두 탔지만 빠른 대응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신인섭 기자]

장승국 비츠로셀 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 군자동 비츠로셀 서울 사무소에서 사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비츠로셀은 화재로 공장이 모두 탔지만 빠른 대응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신인섭 기자]

공장이 일부가 아니라 완전히 불에 타버린다는 것은 제조업체엔 재난을 넘어 재앙에 가깝다. 재기불능 상태에 빠지거나 가까스로 생산을 재개한다 해도 공백이 불가피해 거래처가 끊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원인 불명의 화재로 공장이 사라진 지 불과 2개월 만에 재기의 시동을 걸어 빠른 속도로 정상화에 나선 기업이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세계 3위의 리튬 1차 전지업체인 ‘비츠로셀’이다.

리튬 1차전지 비츠로셀 장승국 대표 #스마트그리드·IoT 분야 수요 급증 #연 매출 910억, 75% 해외서 올려 #화재에도 신뢰 쌓여 이탈 고객 없어 #빠른 재기로 1위 목표 딱 1년 늦춰 #“숙련공 안 내보낸 게 가장 잘한 일”

비츠로셀은 지난 4월 21일 충남 예산공장의 화재로 생산을 완전히 중단했지만 6월부터 최근까지 공장 세 곳을 임차하거나 매입해 가동을 다시 시작했다.

당초 2020년 완공 예정이었던 당진 신공장을 내년 1월까지 완공시킨다는 계획도 세웠다. 당진 신공장은 불이 난 예산 공장보다 3배 정도 더 큰 규모(대지 4만2000㎡)다.

장승국(55) 비츠로셀 대표는 “현재 3곳의 공장에서 화재 발생 전 물량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면서 “연말까지 이전 생산량의 70~80%, 당진 공장이 가동되면 100%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1987년 설립된 이 회사는 리튬 1차 전지를 생산해 2016 회계연도(2015년 7월~2016년 6월)에 91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체 매출의 75%를 해외에서 올린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15~16% 선이다. 화재 이전인 2017 회계연도 3분기(2016년 7월~2017년 3월)까지 매출은 862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34.2% 늘어 성장 속도도 가팔랐다. 최근 6년간 해외시장 매출 증가율은 연평균 25%에 이른다.

리튬 1차 전지는 오래 보관해도 방전이 적고 기존 알칼라인 전지나 망간 전지보다 에너지 밀도와 전압이 높다. 기존 건전지가 1.5V인 데 비해 리튬 1차 전지는 대개 3.6V다. 스마트 그리드(지능형 전력망), 방위산업, 석유시추 장비, 해양기기, 소방·안전장비에서 사물인터넷(IoT)에 이르기까지 수요가 늘고 있다.

하지만 비츠로셀이 처음부터 다양한 전지를 생산했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무전기 배터리 등 군수용 제품만 만들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우그룹 공채 출신인 장 대표는 32세에 대우전자 베네룩스 3국 판매법인 대표에 발탁될 만큼 해외통이다. 그는 2006년 비츠로셀에 합류한 뒤 2008년 대표에 취임하면서 신기술 개발, 생산품목 다각화, 품질 안정화, 해외시장 다변화에 주력했다.

장 대표는 “들어와서 보니 리튬 1차 전지는 아주 재밌고 독특한 시장이었다”면서 “세계 시장 규모는 2조원 정도로 대기업이 뛰어들기엔 크지 않지만 국내 보다 해외 수요가 100배 더 커서 중소기업에겐 매력적이고 전망이 밝았다”고 설명했다. “무전기 배터리에서 리튬 1차 전지로 제품군을 다각화해 해외시장을 공략한 이유다.

이처럼 비츠로셀이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할 때 화재가 찾아왔다. 장 대표는 "화재가 나자마자 현장에서 상황을 보고 낙담했지만 바로 이틀 후에 설비 업체와 미팅을 했고, 대체 공장 부지 계약과 설비 투자를 시작했다”면서 "미국과 유럽 고객, 그리고 투자자를 만나서 ‘우리는 죽지 않는다. 돌아온다’고 약속했고 고객 이탈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투자자와 거래처의 마음을 움직인 비결로 장 대표는 다년간 축적된 품질에 대한 신뢰를 꼽았다. 신뢰는 비츠로셀 직원들에게도 적용되는 키워드다. 일자리를 잃을까 더 걱정이 컸던 직원들에게 장 대표가 ‘정리해고는 없다’고 못박으며 다독거렸다. 실제로 250여명의 생산직 직원은 출근할 장소가 없었지만 통상 임금을 지급받는 유급 휴직을 얻었다. 장 대표가 백방으로 수소문 끝에 빈 공장을 인수하거나 임대하는 방식으로 지난 6월 평택 오성, 7월 평택 청북, 8월 당진 면천 공장이 잇따라 가동에 들어가면서 직원들은 차례대로 직장으로 돌아왔다.

장 대표는 "리튬 1차 전지 품질을 결정짓는 것은 연구개발(R&D) 보다는 양산 과정의 숙련도가 50% 이상”이라면서 "사람과 설비, 시스템이 최적화된 상황에서 ‘지금 어렵다’는 이유로 직원들을 내보낸다면 재기는 더욱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생각해도 재기를 위해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게 직원들을 내보내지 않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비츠로셀은 당초 갖고 있던 세계 1위 목표를 화재로 딱 1년만 늦춘다는 계획이다. 장 대표는 "원래 계획으로는 올해에 2위, 2020년에 1위로 올라선다는 계획이었지만 딱 1년씩만 늦추겠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진지하게 재기를 넘어 비상을 공언했다.

98%

● 중소벤처기업부가 집계한 벤처캐피탈 투자 유치 경험이 없는 중소·벤처기업 비율(2016년 기준). 100곳 중 2곳을 제외하면 벤처 투자를 받지 않았거나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주영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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