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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소년법이 부당하다고 느낀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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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

메리 벨은 영국의 유명한 소녀 살인범이다. 1968년 겨우 열한 살 나이에 세 살과 네 살의 두 소년을 목 졸라 죽였다. 12년을 복역한 후 23세 때 석방되면서 새로운 신원을 부여받았다. 그러니까 메리 벨은 이 살인범이 감옥에서 나오기 전까지 사용하던 이름이다. 지금 60세인 이 여성이 어떤 이름으로 어디서 살아가는지는 알 수 없다.

미성년자 강력 처벌해도 교화 효과 크지 않다는 게 정설 #가해자에 대한 복수보다 피해자 배려에 관심 기울여야

메리 벨의 현재 신원을 공개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녀는 84년에 딸을 낳았는데 영국 법원은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 모녀의 신원이 익명으로 유지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메리 벨은 더 나아가 딸의 사망 시까지 익명 유지를 연장해 줄 것을 요구했고 2003년 이를 인용하는 결정을 받아냈다. 소위 ‘메리 벨 결정(Mary Bell Order)’이다. 이는 개인의 사생활과 가정생활은 보호돼야 한다는 영국 인권법에 근거한 조치다.

형벌이란 일정한 죄를 저지른 경우 처리할 절차와 받아야 할 벌을 사회적으로 합의한 것이니 이론적으로는 법원이 결정한 형벌을 다 받았다면 이후에는 그 죄와 관련해 불리한 대우를 받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보호조치가 없이 메리 벨이 다시 사회에 적응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그 딸은 아무런 죄를 지은 바가 없지 않은가.

다만 문제는 메리 벨이 죽인 두 소년의 가족은 이런 보호를 국가나 사회로부터 전혀 받지 못했다는 데 있다. 죽은 두 소년과 가족의 신원은 대중 앞에 낱낱이 밝혀졌다. 두 소년의 형제들은 자라면서 자기 가족에게 발생한 끔찍한 비극을 싫어도 알 수밖에 없었다. 메리 벨과 그 딸이 법의 보호를 받는 동안 오히려 피해자의 가족은 사건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몇 년 전 메리 벨의 딸이 아들을 출산했을 때 (아기는 Z라고만 알려졌다) 살해당한 소년의 여동생은 아기의 탄생이란 축복할 일이지만 아기의 신원은 공개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자신이나 자기 아이들이 사건과 관련되어 사람들에게 노출돼 평생 고통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메리 벨의 딸이나 그 딸의 아들 역시 같은 고통을 받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토로란 단순히 가해자가 고통받는 것을 보고 싶다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요점은 피해자임에도 적절히 보호받지 못했다는 감정이다. 그것도 가해자는 상대적으로 충분한 보호를 받는 동안에 말이다. 다시 말해 국가와 사회가 죄를 지은 자를 보호하면서 마땅히 더욱 보호해야 할 무고한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거나 혹은 안 했다는 사실에서 느끼는 부당함이다.

최근 한국에서 청소년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가 드높다. 심지어 소년법을 폐지해 미성년자도 사형 및 엄벌에 처할 수 있도록 하자는 청원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성년 범죄자에 대해 처벌 위주의 정책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범죄 예방 효과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은 꽤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설령 소년법이 폐지된다고 해도 미성년자에게 사형을 선고하거나 더 나아가 집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소년법 폐지를 강력히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십대에 불과한 가해자들을 수십 년간 감옥에 처넣거나 정말로 죽여버리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을 터다. 이런 격렬한 반응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 중 하나는 피해자 편에 서서 부당함을 해소하고 싶다는 감정일 것이다. 가해자들이 청소년이기 때문에 특별대우를 받는 반면 피해자는 별다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부당함 말이다.

하지만 가해자를 더욱 가혹하게 처벌한다고 해서 이런 부당함이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복수의 감정 때문에 청소년 인권에 대한 사회적·국제적 합의를 후퇴시키는 것은 더 큰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그러니 사건과 관련한 전반적인 과정에서 피해자를 세심히 보호하고 구체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쪽으로 논의의 방향을 돌려 보는 것이 어떨까.

김세정 런던 GRM Law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