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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할 땐 불법이었는데 이젠 파리의 대표상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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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순백의 옷과 장신구를 차려 입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앉아 저녁식사를 즐긴다. 프랑스 파리에서 온 디너파티 디네 앙 블랑’(Diner en Blanc) 이야기다. 

지난 201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되자마자 독특한 모습으로 눈길을 끌더니, 올해는 서울뿐 아니라 부산까지 두 차례 열렸다. 2017년 5월 행사가 열린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아레나광장엔 1500여 명, 8월 행사장이었던 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는 1000여 명이 모여 광장과 모래사장을 흰색으로 물들이는 장관을 만들어 냈다. 국내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널의 애머릭 파스키에와 샌디 사피 공동대표를 만나 디네 앙 블랑에 대해 물었다.

2017년 서울과 부산에 열린 디네 앙 블랑 행사를 위해 방한한 애머릭 파스키에(오른쪽)와 샌디 사피 공동대표. 프랑스 파리 행사는 창립자이자 애머릭 대표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파스키에가, 그 외 해외 도시에서의 행사는 이 두 명의 대표가 주축이 돼 그 지역의 로컬 호스트 사와 함께 운영한다. 김춘식 기자

2017년 서울과 부산에 열린 디네 앙 블랑 행사를 위해 방한한 애머릭 파스키에(오른쪽)와 샌디 사피 공동대표. 프랑스 파리 행사는 창립자이자 애머릭 대표의 아버지인 프랑수아 파스키에가, 그 외 해외 도시에서의 행사는 이 두 명의 대표가 주축이 돼 그 지역의 로컬 호스트 사와 함께 운영한다. 김춘식 기자

디네 앙 블랑의 뜻이 뭔가.

(샌디 사피, 이하 샌디)프랑스어로 ‘순백의 만찬’이란 의미다. 프랑스 궁정문화를 재현하는 비밀스러운 야외 디너파티로, 이름처럼 옷은 물론 신발·가방·액세서리 그리고 테이블과 의자까지 모두 흰색으로 갖추고 저녁식사를 즐기는 모임이다. 파티에 필요한 음식과 테이블, 의자를 참가자가 직접 준비하는 BYO(Bring your own) 방식으로 진행한다. 올 화이트로 꾸미는 패션뿐만아니라 테이블 세팅에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 8월 26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열린 디네 앙 블랑 행사.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지난 8월 26일 부산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열린 디네 앙 블랑 행사.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어떻게 시작했나.

(애머릭 파스키에, 이하 애머릭) 내 아버지이자 디네 앙 블랑의 창립자인 프랑수아 파스키에의 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다른 지역에 잠시 이주해 살던 아버지가 1988년 파리로 다시 돌아오면서 그 동안 소원했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어 파티를 계획했다. 친구들에게 함께 오고 싶은 다른 친구도 데려오라고 했고 그러다 보니 참석인원이 많아져 널찍한 야외의 공원에서 모이게 됐다. 그 후 아버지는 30년 동안 디네 앙 블랑을 열고 있다. 매년 6월이면 파리에서 열리는 큰 행사로 자리 잡았다.
※파리에서 열리는 행사는 프랑수와 파스키에 개인이, 그 외 해외 도시에서 열리는 행사는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널이 주관해 현지에서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로컬 호스트와 함께 진행한다. 한국의 호스트는 '화이트디너코리아'의 박주영 대표다.

디네 앙 블랑을 만든 프랑수와 파스키에(왼쪽) 부부와 아들 애머릭(가운데).

디네 앙 블랑을 만든 프랑수와 파스키에(왼쪽) 부부와 아들 애머릭(가운데).

전부 흰색으로 차려 입는 이유는 뭔가.

(애머릭)첫 디네 앙 블랑이 열린 장소는 파리 외곽의 불로뉴 숲이었다. 워낙 넓은 숲이고 또 다른 사람들도 많이 오는 곳이라 파티 참석자를 알아볼 수 있는 장치가 필요했다. 멀리서도 파티 참석자를 서로 잘 알아볼 수 있도록 눈에 띄는 흰색으로 드레스 코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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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색도 많은데 굳이 흰색을 택한 이유는.

(애머릭)아버지는 흰색은 긍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데다 6월의 햇빛에 검게 그을린 피부에는 흰색 옷이 멋있어 보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단순한 이유였지만 흰색이 주는 이미지가 강렬해서 이후 디네 앙 블랑이 더 유명해진 것이라 생각한다.

행사직전까지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디네 앙 블랑의 전통이다. 행사 직전 장소를 알려주면 몇 곳의 집결지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이 함께 이동한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행사의 모습.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행사직전까지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디네 앙 블랑의 전통이다. 행사 직전 장소를 알려주면 몇 곳의 집결지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이 함께 이동한다. 사진은 지난 5월 서울 행사의 모습.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행사 직전까지 장소를 알려주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유가 있나.

(애머릭)첫 번째 파티를 열고 4년 후 파리의 심장인 세느강의 퐁데자르(Pont des Arts) 다리에서 파티를 다시 개최했다. 그런데 ‘공공장소에서 일부 개인을 위한 파티를 열 수 없다’는 이유로 행사 허가를 받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파티 장소를 마지막까지 비밀에 부쳤다. 참가자들이 이 자체를 재미있어 했고 이후 디네 앙 블랑을 비밀스럽게 만든 중요한 전통으로 자리잡게 됐다.

파리 행사가 불법이라는 말인가.

(애머릭)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처음엔 그랬다. 허가를 내주지 않아 게릴라처럼 모여 음식을 먹고 재빨리 헤어졌다. 행사 중간에 경찰이 와 다른 곳으로 이동한 적도 있다. 디네 앙 블랑에서 유명한 ‘냅킨 웨이브'도 이것 때문에 생겨났다. 지금은 워낙 파리의 유명한 행사로 자리잡아 행사 개최에 문제가 없다.

지난 5월 열린 디네 앙 블랑에서 애머릭 파스키에 대표가 행사 시작을 알리는 냅킨 웨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지난 5월 열린 디네 앙 블랑에서 애머릭 파스키에 대표가 행사 시작을 알리는 냅킨 웨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냅킨 웨이브가 뭔가.

(샌디)참가자 전원이 하얀색 냅킨을 머리 위로 흔드는 것이다. ‘식사를 시작한다’는 행사 시작 신호다. 게릴라식으로 갑자기 자리를 세팅하다보니 언제부터 행사를 시작하는지 신호가 필요했다. 일찍 왔다고 먼저 먹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함께 식사를 시작하는 게 중요하다.

한국 참가자들이 냅킨 웨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한국 참가자들이 냅킨 웨이브를 하고 있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행사를 이어오기까지 어려운 점은.

(샌디)프랑수와 파스키에의 애정과 열정이 지금까지 행사를 이끌어왔다고 봐야 한다. 2011년 애머릭과 함께 디네 앙 블랑 인터내셔널을 만들면서 파리에 갔을 때의 일이다. 파스키에가 파리 거리를 걷다 말고 갑자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여기 있으니 조명 효과가 좋겠다’며 다음 번 행사를 위한 장소로 그 거리를 택하고 테이블 위치 등 행사장 구성을 그렸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파리 어디에 모여 만찬을 즐기면 좋을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애머릭)파리보다 해외 도시가 더 어렵다. 나라별로 흰색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는 걸 행사를 운영하며 처음 알게 됐다. 특히 특정 정치적 집단을 의미한다든지, 죽음을 상징할 때는 흰옷을 입는 것만으로도 부담감을 느꼈다. 한국만해도 흰색은 장례식에 입는 전통적인 상복의 개념이 있더라. 일본 등 아시아 다른 국가에서도 이런 이유로 다른 색 옷을 입고 싶다고 요청 받은 적이 있다.

그런 경우 다른 색을 허용하나.

(애머릭)아니다. 반드시 흰색을 입도록 한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행사의 유래, 전통을 이야기하고 설득하니 결국 다 따라줬다. 어느 장소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디네 앙 블랑만의 약속이 있다. 모든 것이 흰색일 것, 그리고 앞서 말한 것처럼 행사 직전까지 장소를 비밀에 부칠 것. 이 두 가지는 세계 어디서든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행사 모습. [사진 디네앙블랑]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행사 모습. [사진 디네앙블랑]

디네 앙 블랑의 규모는 얼마나 되나.

(샌디) 1988년 파리를 시작으로 2012년엔 호주 브리즈번과 시드니, 캐나다 토론토, 영국 런던, 스페인 바로셀로나, 미국 시카고 등 해외 도시로 진출했다. 지금은 세계 25개국 75개 도시에서 열리고 있다. 참가인원만 해도 1년에 12만 명, 웨이팅 리스트는 이의 다섯 배인 60만 명에 달한다. 참가자도 점점 늘어나 개최 도시마다 매년 1000명씩 늘고 있는 추세다.
※디네 앙 블랑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호스트의 초청을 받아야 한다. 호스트는 디네앙블랑 인터내셔널과 라이센스 계약을 맺은 회사나 대표자를 말하는데 지난 참석자에게 우선권을 준다. 호스트에게 초청받지 못했거나 처음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은 홈페이지를 통해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면 선착순으로 참가권을 준다. 참가비는 5만5000원(1인 기준). 음식, 테이블·의자 대여비 등이 포함되지 않은 순수한 행사 참가비다.

'디네 앙 블랑' 이끄는 애머릭 파스키에 대표 인터뷰 #1988년 파리에서 시작한 순백의 야외 디너파티 #서울 비롯해 전세계 75개 도시에서 열려 #"흰옷 잘 소화하는 건 뉴욕, 서울은…" #"옷 부담 말고 가족·친구와 함께 하는 시간 즐겨라" #

참가자들의 패션이 볼거리다. 가장 옷을 잘 입는 곳은 어디인가.

(샌디)미국 뉴욕이다. 이건 정말 절대적이다. 다른 도시가 따라올 수 없다. 클래식에서부터 극단적인 스타일까지 실험적이고 과감한 패션을 보여준다. 몇 해전 한 참가자가 기억에 남는다. 자신의 어깨를 훨씬 넘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챙이 넓은 모자를 직접 만들어 쓰고 온 여성이었다. 모자 위는 직접 나비 장식을 만들어 정원처럼 꾸몄는데 정성도 대단했지만 마치 오뜨쿠튀르의 의상처럼 우아하고 실험적이었다.

뉴욕의 디네 앙 블랑 행사 모습. 개성있게 화이트 드레스들을 차려입고 뽐내고 있다. [사진 에릭 비탈 포토그래퍼]

뉴욕의 디네 앙 블랑 행사 모습. 개성있게 화이트 드레스들을 차려입고 뽐내고 있다. [사진 에릭 비탈 포토그래퍼]

패션의 도시로 치면 파리 역시 빼놓을 수 없는데.

(애머릭)파리 사람들은 드레스 코드를 잘 안 지킨다. 자기만의 해석으로 베이지색 옷과 여러 컬러를 조합해 입고 오는데, 솔직히 이건 디네 앙 블랑의 규칙과 맞지 않는다. 반면 뉴욕은 정말 ‘화이트’ 안에서만 여러 가지 실험을 한다.

한국은 어떤가.

(샌디)참가자들이 너무 잘 차려 입어 놀랐다. 드레스 같은 한복을 입고 온 사람도 있었다. 흰색 옷에 부담감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난 5월 서울 잠실에 열린 제2회 디네 앙 블랑 서울 행사. 이날 1500명이 흰옷을 입고 모여 앉아 저녁을 즐겼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지난 5월 서울 잠실에 열린 제2회 디네 앙 블랑 서울 행사. 이날 1500명이 흰옷을 입고 모여 앉아 저녁을 즐겼다. [사진 화이트디너코리아]

디네 앙 블랑에 참석한 게스트들이 경험하길 원하는 가치가 있다면.

(샌디)가족·친구와 함께 하는 그 시간을 편안하게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흰옷이 더러워질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말이다. 함께 모여 즐겁게 식사를 하고 대화를 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게 더 중요하다. 옷이 좀 더러워지면 어떤가.

글=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사진=화이트디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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