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올랐다고 나랏돈 보태주는 건 세계 유례 없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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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내년 최저임금은 7530원이다. 금액 기준으로 사상 최고 인상 폭(1060원)이다. 정부가 약 3조원을 투입해 영세사업주의 인건비 부담을 덜어 주겠다고 나선 이유다. 취재 결과 올해 지원분 2조9707억원의 세부 산정 근거가 처음 밝혀졌다. 그동안 기획재정부는 총액만 밝히고 누구에게, 어떻게 지원하는지 구체적인 근거를 밝히지 않았다. 일단 정부는 지원 대상을 ‘인상된 최저임금을 지급할 여력은 있지만 재정이 부실한 사업장(A)’과 ‘아예 지급할 여력이 없는 사업장(B)’으로 나눌 계획이다. 두 사업장의 대상자는 각각 140만 명, 160만 명이다. A사업장은 최근 5년 최저임금 인상률을 상회하는 추가 부담액(월 12만원)과 사회보험료 지원금(1만원)을 합해 13만원을 정액 지원한다. 단시간 근로자가 많은 B사업장은 13만원의 약 절반(53.8%)만 지원할 방침이다. A와 B에 각각 2조1000억원, 9000억원씩을 지원한다.

재정 직접 지원하면 끊기 어려워 #외국선 세제 혜택 주는 데 그쳐 #“대통령 공약으로 내건 것도 문제”

그러나 국가재정으로 민간기업의 임금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전 세계에 유례가 없다. 추경호 자유한국당 의원은 “직접 지원은 한번 시작하면 중단하기 어려운 데다 정부가 민간기업의 임금 체계에 과도하게 개입하면 시장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정부가 기업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세제 혜택을 주거나 인프라를 지원하는 정도일 뿐 임금을 대신 지급하는 경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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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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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중소기업 조성금 사업이 대표적이다. 시급 800엔 미만인 근로자의 임금을 올려준 소규모 사업장을 대상으로 설비·기계 도입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이다. 기간제나 단시간 근로자 등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하는 사업장에 혜택을 주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임금 인상이 어려운 경우엔 해결을 도울 상담전문가를 파견하기도 한다.

프랑스와 미국은 더 적극적이었다. 프랑스는 2000년대 중반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 일부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세금 우대 조치를 실시한 적이 있다. 2013년 이후에는 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한 사용자의 사회보험료를 감면해 주고 있다. 고용보험 등 사회보험료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일정 비율로 함께 분담한다. 이 중 사업주의 부담을 정부가 덜어 주는 식이다.

미국은 2007~2009년 시간당 최저임금(연방 기준) 5.15달러에서 7.25달러로 크게 올렸다. 그러면서 미국 정부는 ‘일자리 및 성장을 위한 조세 경감 조정법’이 규정한 비용 처리 인정분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조세 감면 혜택을 줬다.

당초 최저임금 직접 지원 방안을 설계할 때 기획재정부 내에서도 상당한 반론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한 기재부 관계자는 “대놓고 말을 못하는 분위기였지만 이건 좀 과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과 관계자들이 7월 2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를 방문, 2018년도 최저임금 이의제기서를 제출하기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김성태/2017.07.28

최승재 소상공인연합회장과 관계자들이 7월 28일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를 방문, 2018년도 최저임금 이의제기서를 제출하기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김성태/2017.07.28

정부가 최저임금 결정에 개입한 것부터가 ‘패착’이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위원으로 구성된 27명의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다. 여기서 정한 최저임금을 정부가 바꾸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는 ‘2020년 1만원’이란 공약을 앞세워 내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 적극 개입했다.

2018년 최저임금을 결정하던 7월 15일엔 ‘인상액의 8% 정도를 정부가 현금으로 지원하겠다’는 내용을 흘려 판을 흔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엔 기다렸다는 듯 지원책을 내놨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최저임금을 대통령이 결정하는 것도 아닌데 공약으로 내세운 것부터가 잘못”이라며 “차제에 최저임금을 산업별·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등의 근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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