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지금 으스스…보관소마다 시신 넘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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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시내에는 관이 모자라 장례를 못치르는 상주들이 발을 구르고 시외곽에는 연고없는 시신들이 즐비해…. 전쟁 또는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간 황폐한 도시를 얘기하는 게 아니다.

언제 살인 더위가 있었냐는 듯 청명하고 선선한 초가을 날씨에 늘 그렇듯이 관광객이 들끓고 있는 파리의 얘기다. 지난 3주 동안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산되는 폭염이 남긴 후유증이다.

파리 시 당국은 근교도시 이브리의 공단 지역에 대형 냉동트럭 10대를 배치, 시신 보관소로 이용하고 있다. 파리 시내 시신공시소의 용량이 부족해 근교도시 렁지스에 임시 시신보관소를 만들었지만 그것으로도 당해낼 수 없어 생각해낸 고육책이다.

매일 수십구의 시신이 매장되고 있으나 이들 세곳에는 여전히 무연고 시신 수백구가 보관돼 있다. 시신이 밀려들자 파리 경찰청은 24일 사망 후 열흘이 지나도록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바로 시신을 매장토록 하는 행정명령을 공표했다. 한편 파리 시 당국은 대책반 20여명을 가동해 시신의 친척들을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다.

한때 무연고 시신을 집단 매장할 것이란 소문이 나돌자 인권단체들이 들썩이기도 했다. 파리시는 "무연고자들은 파리근교 티에 시립묘지에 개별적으로 매장될 것"이라고 서둘러 해명하기도 했다.

수요 폭증에 시달리는 장례업체들이 관을 제때 공급하지 못해 연고 있는 시신들도 며칠씩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파리는 원활한 공급을 위해 다음달 1일까지 장례용품을 실은 트럭의 도심 통행을 허용했다. 또한 일요일에도 장례식과 매장 또는 화장이 이뤄질 수 있도록 시 소속 인부들을 동원하고 있다.

파리=이훈범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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