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에 쫓기는 학생들 방학숙제하는 낭만 알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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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학창시절 나는 방학이 무조건 노는 기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방학 때 신나게 논 일보다는 개학 무렵 밀린 숙제를 한꺼번에 하느라 밤을 샌 기억이 더 또렷하다.

개학을 하루 남기고는 숙제가 너무 많다며 선생님을 원망한 적도 적지 않았다. 돌아보면 숙제가 많은 것이 아니었는데 말이다.

이제 교사가 되어 거꾸로 숙제를 내는 입장이 되었다.

지난주 방학 중에 교실 청소를 하기 위해 등교한 학생들에게 내준 숙제가 궁금해 물었다. 얘기를 꺼내자마자 학생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숙제가 주제 신문 만들기였는데 아무래도 좀 어려웠던 모양이다.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다는 학생, 학원엘 다니느라 시간이 없어 못하겠다는 학생, 숙제가 있었느냐고 엉뚱하게 되묻는 학생까지 있었다. 할 수 없이 청소를 서둘러 마치게 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학생들에게 신문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주제를 정한 뒤 레이아웃을 하고, 기사를 쓰고, 사진을 붙이고, 만화를 그리고, 광고를 만드는 등 편집에서 수정하는 것까지 자세하게 얘기했다.

말미에 숙제 결과물을 수행평가에 반영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러자 몇은 아예 교실에 남아 숙제를 마친 뒤 집에 가겠노라며 참고로 삼을 만한 기사를 스크랩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중앙일보 8월 12일자 NIE면(21면)에 소개된 '주제 신문 만들기' 기사 스크랩을 보여주며, 신문 만드는 숙제의 목적이 정보의 생산과 전파 과정을 알고 필요한 정보를 스스로 찾는 능력을 기르는 데 있다는 사실도 알려 주었다.

설명을 들은 뒤 흥미를 가지고 신문을 열심히 만드는 학생들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사진 위에 낙서를 하며 장난을 쳤다. 장난 치는 학생들을 나무라며 한편으론 그네들이 측은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 나는 방학이면 정신없이 놀았는데 요즘엔 학원엘 다니거나 과외를 받느라 여가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 견학과 캠프까지 겹치면 방학숙제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학생이 더러 있다.

하지만 지금 학생들이 과거 우리보다 방학을 보람있게 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매미와 개구리를 잡으러 다니는 여유도 없고, 방학이 끝날 무렵 졸린 눈을 비비며 밀린 숙제를 하는 '낭만'도 모른다.

그러나저러나 즐겁고 유익하라고 내준 신문 만들기 숙제를 짐처럼 생각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이 늘어 걱정이다. 이 학생들이 어른이 되면 방학을 어떻게 추억할지 모르겠다.

신봉철 중앙일보 NIE 연구위원<인천 불로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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