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report] 공매도 고삐 죄기 … 코스닥 ‘탈출 러시’ 잠재울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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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다음달 29일 코스닥 시가총액 1위인 셀트리온이 임시 주주총회를 열어 코스피로 이전 상장할지를 가린다. 코스닥 시가총액 2위였던 카카오가 지난달 코스피로 자리를 옮긴 데 이어 셀트리온까지 ‘코스닥 탈출’을 저울질 중이다.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이끈 건 소액주주들이다. 이들을 움직이게 한 건 공매도다. 발단은 지난 4일 증권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한 셀트리온 주주의 글이다.

다음달 25일부터 새 규제 적용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쉽게 만들어 #다음 거래일 하루 동안 매매 제한 #시장선 “투자자 설득엔 미흡” 평가 #셀트리온, 이전 상장은 내달 결정 #“우량 종목 발굴 자금 유입 유도해야”

“수년 동안 공매도로 인한 폐해가 주주를 괴롭혔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다년간의 지속적인 공매도로 신규 투자자는 진입을 망설이거나 셀트리온을 아예 거들떠 보지도 않게 만들어 버리고 있다. 공매도와의 악연을 끊어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으로 코스피 이전상장을 위해 임시주총을 정식으로 회사에 건의하고자 한다.”

공매도의 폐해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자 금융당국도 제도 손질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한국거래소 규정 개정을 거쳐 다음달 25일부터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요건을 대폭 완화한다고 23일 밝혔다. 현재는 3가지 요건(주가 5% 이상 하락, 거래대금 중 공매도 비중 20% 이상, 공매도 비중 평소의 2배 이상 증가)을 모두 갖춰야만 과열종목으로 지정한다. 올 3월 과열종목 제도 시행 이후 4개월간 지정된 종목이 11건(코스피 5건, 코스닥 6건)에 불과했다. 요건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지난 6월 엔씨소프트 주가가 공매도로 휘청일 때도 엄격한 요건 탓에 과열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앞으로 기존 공매도 비중 증가율 2배 요건은 사라지고 공매도 거래대금이 종전(직전 40거래일 평균)보다 5배(코스피) 또는 6배(코스닥) 늘어났는지를 따지기로 했다. 특히 공매도 거래대금이 5~6배로 급증하고 주가가 10% 이상 급락했다면 거래대금 중 공매도 비중이 얼마든지 상관없이 과열종목으로 지정한다. 또 코스닥 시장에서는 40거래일 평균 공매도 비중이 5% 이상인 종목은 공매도 거래대금이 급증하면 주가 하락률과 관계없이 과열종목에 지정된다. 과열종목으로 지정되면 다음 하루 동안 공매도 거래가 제한된다.

금융위 시뮬레이션 결과 제도를 바꾸면 코스피 시장에선 5.2거래일당 1건, 코스닥 시장에선 0.8거래일당 1건의 과열종목이 나오게 된다. 기존에 13.8(코스닥)~16.6거래일(코스피)당 1건이었던 것과 비교해 지정 건수가 크게 늘어난다. 박민우 금융위 자본시장과장은 “지난 4개월간 데이터에 따르면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이 비이성적인 투매로 인한 주가 하락을 막는 순기능이 확인된다”며 “공매도 과열종목을 뽑아내는 빈도를 대폭 확대해서 시장 안정 기능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셀트리온도 이번 제도 개정의 영향을 받는다. 올 들어 셀트리온은 단 한 번도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주가 하락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서다. 양연채 한국거래소 코스닥매매제도팀장은 “다음 달 25일부터 적용될 새 기준을 가상으로 적용해봤더니 셀트리온은 올 1월부터 7월까지 6회 공매도 과열종목으로 지정되는 효과가 났다”며 “연간으로 하면 10여 회 정도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과연 이런 ‘당근책’이 셀트리온을 비롯한 코스닥 투자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까. 시장의 평가는 부정적이다.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다. 1일간 공매도를 제한하는 과열종목 지정 확대가 공매도 부작용을 막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매도에 대한 개인 투자자의 불만을 가라앉히는 것도 숙제로 남았다. 셀트리온 이전상장 주총의 ‘방아쇠’ 역할을 한 것도 소액주주들이다. 국내 공매도 시장이 철저히 외국인·기관 투자자 중심이기 때문이다. 올 1~8월 기준 코스닥 공매도에서 외국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81.9%에 이른다. 기관은 17.6%고 개인은 0.5%에 불과하다. 코스피(외국인 70.7%, 기관 29%, 개인 0.3%)보다 코스닥에서 외국인 편중 현상이 심하다.

일각에서 나오는 공매도 폐지론에 대해 금융당국은 선을 긋는다. 안일찬 한국거래소 주식매매제도팀장은 “기업 가치와 동떨어지게 고평가된 주식의 가격을 안정시키는 수단으로 공매도는 선진국에서 더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일본 도쿄증권거래소(JPX)의 공매도 거래대금 비중은 39.4%,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42.4%에 달한다. 한국 코스피(6.4%)와 코스닥(1.7%)과 격차가 크다. 안 팀장은 “선진국 역시 공매도는 기관·외국인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데 한국의 경우 개인의 직접 투자 비중이 높다 보니 공매도의 부작용을 상대적으로 크게 체감하는 듯 하다”고 설명했다. 대표주 이탈을 막으려면 투자자 사이에 굳어진 ‘코스닥은 2부 리그’란 인식을 해소하는 것이 결국 중요하다.

김용구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시장 수급 자체가 개별 종목, 특정 업종에 투자하는 액티브 자금 대신 주요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자금 중심으로 움직이면서 중소형주 중심의 코스닥 시장 투자 공동화 현상이 야기되고 있다”면서 “코스닥 시장을 대표하는 우량 지수를 만들고 우량 코스닥 종목을 추가로 발굴하는 근본적인 노력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

특정 종목의 주가가 하락할 것으로 예상할 때 증권사 등에서 주식을 빌려 매도 주문을 낸 뒤 주가가 내려가면 이를 되사서 차익을 내는 투자 방법. 공매도가 몰리면 해당 종목의 주가는 그만큼 급락할 위험이 커진다.

이새누리·한애란 기자 newwor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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