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외로워" 570건 허위신고 여성, 112블랙리스트 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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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112종합상황실에서 신고 전화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경찰이 112종합상황실에서 신고 전화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1년간 112종합상황실에 570회 허위신고를 한 50대 여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우울증과 조현병 앓는 50대 정씨 가족들이 자신의 이야기 들어주지 않자 경찰에 하소연 #정씨 번호뜨면 112상황실 신호등에 빨간불 켜지고 '상습 허위신고자' 문구 떠 #경찰 "응대 핵심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1시간씩 통화하면 고역"

부산 부산진경찰서는 위계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정모(53)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1일 밝혔다.

경찰 조사결과 정씨는 6년 전부터 우울증 앓고 있으며, 지난해부터 조현병 증세가 더해지면서 112로 허위신고 하는 일이 벌어졌다. 정씨는 2016년 5월 5일부터 2017년 4월 25일까지 무려 570회 허위신고 전화를 했다. 하루 평균 1.5가 넘는 셈이다. 정씨가 자살을 암시하는 말들을 하는 탓에 부산 전포파출소 소속 경찰들이 정씨 집으로 출동한 횟수는 50여 회에 달한다.

공장에 다니는 남편과 중학생인 아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자 정씨가 112로 전화를 걸어 외로움을 달랬던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부산진경찰서 노정기 강력5팀장은 “정씨는 전화를 걸 때마다 최소 10분, 많게는 1시간씩 경찰들에게 이런저런 하소연을 했다”며 “남편 이야기부터 사회에 대한 원망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앞뒤 맥락에 맞지 않게 말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정씨의 허위신고가 100회 넘어가자 부산경찰청은 정씨를 일종의 '블랙리스트'에 올려놨다고 한다. 정씨의 번호로 112종합상황실에 전화가 오면 유선전화 앞에 설치된 신고등에 빨간불이 켜지고 모니터에는 ‘상습 허위신고자’라는 문구가 뜬다.
112종합상황실에는 20여명이 넘는 경찰이 교대근무를 하고 있지만 정씨의 인적 사항과 특이점을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노 팀장은 “허위 상습신고자 응대 매뉴얼이 세세하게 있지만, 핵심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라고 말했다.우울증이나 조현병을 앓는 환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 정신적 결핍이 생기는 경우가 많다는 심리학적 분석에 따른 조치다.
노 팀장은 “헛소리를 하고,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하더라도 마냥 들어줄 수밖에 없어 고역”이라고 털어놨다. 일종의 전화괴롭힘을 당하는 '감정노동자'와 같은 처지라는 얘기다.

경찰은  정씨의 허위신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난 4일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일종의 충격요법이라고 했다. 노 팀장은 “구속영장이 기각될 수도 있었지만 청구했다”며 “정씨가 법원에 가서 영장실질심사 조사를 받고, 유치장에 12시간 머무르면서 허위신고가 범죄라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번 일로 정씨의 정신적 결핍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은 “아내의 상황이 이렇게 심각한 줄 몰랐다”며 “재발방지를 위해 신경쓰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의 충격요법이 효과를 발휘해 정씨가 또다시 허위 신고전화를 하지 않을지, 아니면 또다시 외롭다는 이유로 괴롭힘 전화를 걸어올지 부산112종합상황실에서 근무하는 경찰들은 가슴조리며 지켜보고 있다고 한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부산진경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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