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트] 강남엔 동굴극장까지 짓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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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예술의전당이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우면산 자락 지하 뮤지컬 극장 건립 움직임이 구체화하고 있다. 조감도를 공개한 전당 측 관계자는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는 환경 친화적인 극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동굴처럼 습한 지역에 대형 극장이 들어서는 것은 난센스"라며 "1만여평 부지에 1천5백석과 1천여석 극장 두개가 문을 열더라도 그 유지와 보수에 돈을 더 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건축계의 지적은 그렇다고 치자.

정작 문제는 대형 극장이 밀집한 강남 지역에 극장이 또 들어설 경우 문화적 낙후 지역인 강북 지역과 차이는 더욱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강남 지역에는 예술의전당.LG아트센터. 한전아츠풀센터 등 1천석이 넘는 최신식 극장이 들어서 있다.

반면 강북은 어떤가. 지난해 말 서울시의 자치구별 통계현황에 따르면 인구 1만명당 문화시설 수는 강남구 2.2곳.서초구 0.8곳인 데 반해 강북.도봉.은평구는 0.2곳 안팎인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시설 인프라가 강남구의 10분의 1 수준인 것이다.

그나마 강북의 자랑인 세종문화회관은 내년 3월까지 극장 리모델링으로 문을 닫은 상태고, 국립극장은 오는 10월 건물 개보수 작업에 들어간다. 은평구 국립보건원 부지에 제 2의 세종문화회관이 들어서는 것도 아직까지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술의전당 측은 "동굴 내 뮤지컬 극장은 아마 세계 최초일 것"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세계 유수의 건축가들조차 아직까지 동굴 극장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건 아닐까.

예술의전당이 극장이 태부족인 국내 현실에서 굴까지 파가며 극장을 짓겠다는 모험적 발상에 흠집을 내자는 게 아니다. 행여 현실적 우려를 외면한 채 명분만 좇는 게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건립비 2백70억원이라는 적지 않은 돈으로 보건원 부지 등에 '제2의 예술의전당'을 세우는 것이 오히려 명분이 있는 일이 아닐까 싶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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