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물어내라" 잇단 배상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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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전직 벤처기업인인 S씨(53)는 지난달 A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30% 이상의 수익을 장담하면서 투자를 권유했던 이 증권사의 투자상담사가 자신의 투자금 11억여원을 몽땅 날렸기 때문이다.

S씨와 A증권사의 악연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3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S씨는 친구 소개로 A증권사 사무실에서 투자상담사 K씨를 알게 됐다. K씨는 "당신의 주식(시가 10억원 상당)을 내게 맡기면 무위험으로 수익률 30% 이상을 보장하겠다"며 선물.옵션 투자를 권했다.

주가지수가 1천선을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활황이었던데다, '손해가 안나는 거래만 한다'는 약정서까지 써주자 S씨는 투자를 결심했다. 모든 매매는 K씨에게 일임했다.

그러나 6개월도 안된 지난해 8월 S씨는 투자금 11억1천여만원을 모두 날린 사실을 알게 됐다. 게다가 증권사 투자상담사라던 K씨는 A증권사와 계약이 끝난 상태였다. 또 S씨의 돈으로 잦은 매매를 한 덕분에 A증권사는 3억6천만원의 수수료를 벌었고 K씨는 이 중 1억7천여만원을 성과급으로 챙긴 것으로 드러났다.

거액의 재산을 잃고 증권사에 배신감을 느낀 S씨는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 신청을 했다. 금감원은 지난 3월 "무자격 투자상담사의 부당 권유과 투자자 보호의무를 위반한 과당 매매가 인정되므로 A증권사는 6억6천7백여만원을 지급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증권사 측은 "전직 투자상담사와 S씨 사이의 문제를 증권사가 책임질 이유가 없다"며 배상을 거절했다. 금감원의 조정 결정은 양측이 합의하기 전에는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이들의 분쟁은 소송으로 이어졌다.

투자자와 증권사 간의 분쟁이 속출하고 있다. 올 상반기 금감원에서 처리된 증권 관련 분쟁만 4백47건에 달한다. 이외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소비자보호원에 접수된 사례까지 합하면 매년 1천여건에 이른다. 이 중 일임매매 때문에 생기는 분쟁이 40% 수준이다.

이런 분쟁은 투자자와 증권사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때문에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법원의 판례는 ▶증권사가 투자를 과다하게 권유했는지 ▶증권사가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했는지 ▶투자자가 손해를 어느 정도 인지했는지 등에 따라 사례마다 책임 비율이 다르다.

금감원 금융분쟁조정위원회의 김칠상 선임검사역은 "올 상반기에 24건에 대한 조정이 있었지만, 양측이 순순히 합의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소 분쟁조정실(1577-0088) 서정욱 차장은 "투자자들이 전적으로 증권사에 의존해서는 안되며, 분쟁이 생겼을 때를 대비한 행동요령도 갖춰야 한다"고 충고했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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