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 영화천국] '불바다' 꿈이 대박 쪽집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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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복권 당첨자가 돼지꿈을 꾸는 것처럼 영화 관계자들도 개봉 전에 대박 꿈을 꾸나. 그리고 꿈을 꾸면 결과와 일치하는지 궁금하다.

A: 꾼다. 이 기사를 쓰기 위해 수소문해보니 꿈 소재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것이 불과 똥이었다(자꾸 똥, 똥 하기 민망하므로 앞으로는 X로 표기한다). 아무래도 충무로는 돼지보다는 불과 X을 선호하는 듯 싶다. 불이 나면 재산이 불길처럼 늘어난다, X꿈은 돈이 들어오고 물꿈은 손해보는 꿈이다, 는 속설과도 맞아떨어진다.

올 최고의 화제작 '살인의 추억'관계자는 개봉을 앞두고 사무실에서 불이 나 강남 일대가 온통 '불바다'가 되는 꿈을 꿨다. 첫주 전국 45만명이라는 쾌조의 출발을 보인 '바람난 가족'은 임상수 감독이 판자에 불을 붙이는 꿈을 꿨다. '바람난 가족'에 잠깐 출연하기도 했던 한 마케팅 담당자는 꿈 속에서 온 몸에 머드팩을 하듯 'X칠갑'을 했단다.

최근 개봉한 한 영화는 영화사 직원이 재래식 공중 화장실에 X이 넘쳐흐르는 꿈을 꿨다. 그런데 이 직원은 꿈 속에서도 너무 더럽다는 생각에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이 영화는 개봉 첫주 전국 30만이라는, 터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된 것도 아닌 어중간한 수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꿈 내용이 알려지자 영화사 사람들이 일제히 탄식한 말이 걸작이다. "아이고, 아무리 더러워도 엉덩이를 디밀었어야지!"

태몽을 올케나 시누이가 꾸기도 하는 것처럼 이 '대박몽(夢)'도 영화와 직접적인 이해 관계가 없는 주변 사람이 대신 꿔주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말 극장에 걸린 설경구.차승원 주연의 '광복절 특사'는 같은 건물을 쓰는 다른 영화사 대표가 꿈을 꿨다. 티켓이 다 팔려 한 남자가 극장 문을 두드리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매진이라도 구름떼같이 사람이 몰리는 건 아니었는데 현실도 비슷하게 맞아떨어졌다. 김상진 감독은 4백만명을 내다봤지만 3백20만명에 그쳤던 것이다.

재미난 건 이 영화사 대표가 '엽기적인 그녀'때 이미 영험함을 자랑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엽기적인 그녀'를 만든 신씨네의 신철 대표가 높은 곳에 올라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꿈을 대신 꿨고 현실은 대박으로 이어졌다. 이 분, 영화사 일이 여의치 않으면 돗자리 깔면 어떠실지.

이런 꿈 얘기는 개봉 후 성적이 웬만큼 좋았을 때 비로소 회자된다. 그러니 꿈과 결과가 일치하는 지는 솔직히 알 수 없다. 충무로에 돌아다니는 꿈 얘기는 죄다 성공 사례뿐이니까. 충무로에서도 1등만이 기억되나보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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