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실험 전에 FDA 규정집부터 봐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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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미국에서는 시간이 빨리 안 가서 힘들었는데, 한국은 속사포처럼 지나가는군요. 역시 다이나믹 코리아예요."

제대혈 은행 및 임상시험 대행사업을 하는 라이프코드의 모미진(33.미국명 제시카 무.사진) 신약개발컨설팅 팀장은 한국에서 보낸 지난 한달의 소회를 유창한 한국말로 털어놨다. 그는 지난달 이 회사 최수환 대표에게 미국에서 스카우트됐다.

국내 제약 및 바이오 업계가 모 팀장의 영입을 예사롭지 않게 보는 것은 그가 미 식품의약국(FDA) 출신으로는 처음 한국기업에 몸담게 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UCLA)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대형 진단기술 개발회사인 래버러토리 코프 아메리카에서 인.허가 업무를 한 뒤 2002년부터 FDA에서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인.허가를 맡는 소비자 검사관으로 일했다. FDA 재직 기간 신약개발 인.허가 전문 자격증(RAPS)을 따기도 했다. 이 자격증 소지자는 미국 내에 3000명 정도 밖에 안된다.

미 FDA는 전 세계 FDA 가운데 식품 및 의약의 인.허가 규정과 절차가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미국의 임상시험 대행업체에 전문 컨설팅을 받으려면 거액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2003년 LG생명과학의 퀴놀론계 항생제 '팩티브'만 FDA의 신약판매허가를 어렵사리 따냈다.

모 팀장은 9년간의 미국 내 인.허가 업무 경력을 발판으로 라이프코드에서 한국 및 중국 제약업체들을 상대로 신약개발 컨설팅을 할 예정이다. 그는 "신약으로 미국시장을 뚫으려면 개발 초기 단계서부터 전략을 명확하게 수립하라"고 국내 업계에 충고했다.

우리나라 제약업계는 신약 후보물질에 대한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마친 뒤에나 미 FDA 규정을 따져 보고 뒤늦게 잘못을 알아 거의 처음부터 다시 임상시험을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는 것이다. 마음만 앞섰지 미 FDA 관련 지식은 거의 전무했다는 지적이다.

그는 또 "미 FDA의 모든 업무는 시스템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에 로비나 접대가 통하지 않는다"며 "민원인과 면담이 필요하면 사무실 로비에서 커피나 콜라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정도가 고작"이라고 말했다.

모 팀장은 대만 국적의 화교로 서울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다. 중학 1년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갔다가 부모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오고 혼자 친척 집에서 학업을 마쳤다. 그래서 한국어는 물론 영어와 중국어를 다 잘한다.

"언젠가는 부모님이 계시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어요. 미 FDA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서 한국의 신약개발에 기여했으면 좋겠어요."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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