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청와대의 자리, 기업인의 자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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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어제까지 이틀에 걸쳐 청와대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과 기업인들의 만남은 여러모로 신선했다. 호프미팅으로 시작한 회동은 예정된 시간을 넘겨가며 이어졌다. 대통령은 기업인의 개인사나 기업 현황과 관련된 ‘맞춤형’ 질문을 세심하게 던지며 분위기를 편안하게 이끌었고, 기업인들의 목소리에 경청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업이 잘돼야 나라 경제가 잘된다”는 대통령의 건배사도 눈길을 끌었다.

기업인들도 모호한 비정규직 기준이나 규제 완화 필요성과 함께 각 기업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어려움을 완곡하게나마 청와대에 전달했다. 물론 법인세 인상이나 최저임금 문제처럼 민감한 이슈가 화제에 오르지는 못했다.

재계와의 허심탄회한 소통을 위해 청와대가 보여준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청와대에 재계 인사를 초청하는 행사를 세 차례 하긴 했다. 하지만 청와대에서 열린 이런 공개행사뿐 아니라 ‘삼청동 안가(安家)’에서 박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의 비밀스러운 독대(獨對)가 여러 차례 있었음이 지난해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났다. 맥주잔을 들고 청와대 상춘재 앞마당에서 대통령과 기업인들이 자연스레 어울리는 사진은 ‘안가의 독대’가 주는 칙칙한 느낌을 날려보내기에 충분했다.

이번 회동이 정치권력과 재계가 마땅히 서 있어야 할 자리를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재계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표방한 새 정부는 흔들리지 않고 법과 원칙을 지켜가면서 이런 목표를 지향해 나가야 한다. 재계도 일시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사회공헌이 아니라 더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동반성장 전략을 고민하기 바란다. 협력회사뿐 아니라 임직원, 소비자와 지역 주민의 마음까지 잘 헤아려야 한다. 이들이야말로 정치바람을 막는 든든한 우군이 될 수 있다. 밀려서 하는 상생엔 감동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