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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오락가락 원전 정책 … 정부의 진짜 속내는 무엇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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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 계속 혼란을 키우고 있다.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론화위원회는 그제 2차 회의에서 “공론조사 결과는 (정부에 대한) 권고안일 뿐”이라며 기존 정부안을 뒤집는 이변을 일으켰다. 이희진 공론화위 대변인은 “공론조사는 공론조사 참여자의 의견 변화 과정을 조사하고 일정한 합의안을 만들어 정부에 권하는 방식”이라며 “시민배심원단은 위원회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어제 다시 언론설명문을 통해 의견 수렴 방식이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공론화위,“신고리 판단은 정부 몫” #수출은 되고 국내는 안 된다는 모순 #핑퐁게임 그치고 과학적 접근 해야

앞서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신고리 5, 6호기 공사 일시 중단을 반대하는 한수원 노조의 제지를 피해 호텔에서 날치기 의결을 한 데 이어 코미디 같은 반전들이 꼬리를 물며 혼선을 빚고 있다. 이런 혼란은 국가 백년대계에 따라 결정돼 온 에너지정책을 새 정부가 과학보다는 정치적 신념에 따라 급변침을 시도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일이다.

문제는 이런 혼선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입장에는 변화의 조짐이 없다는 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문 대통령과 정부는 공론화위에 사실상 결정권을 준 것”이라며 “법 절차상 공론화위가 최종적인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 않다는 의미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신고리 원전 문제는 정부와 공론화위 사이에 서로 책임을 떠넘기는 핑퐁게임으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탈원전을 100대 국정과제로 못 박아 드라이브를 걸고, 공론화위는 법적 근거와 대표성 결여에 대한 논란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되면서 양측은 엇박자를 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기업인들과의 호프미팅에서 원전의 해외 진출은 적극 지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는데, 이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국내에서는 ‘탈원전 정책으로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전환’하겠다며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다른 나라에는 원전을 사라는 것이어서 자가당착이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3대 원전 강국으로 꼽히면서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영국에도 원전 수출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영국의 원전 사업자들은 최근 신고리 5, 6호기에 투입될 한국형 원전의 영국 원전 공사 참여를 잇따라 타진해 오고 있다. 한국에서는 위험하니 탈원전을 하겠다면서 다른 나라에 한국형 원전을 도입하라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이렇게 혼선이 빚어지고 원전에 대한 입장이 오락가락하게 되면서 국민은 정부의 진짜 속내가 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더구나 한수원에 대해 원전 이용과 안전에 대한 홍보를 중단시키는 등 탈원전 논의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혼란을 불식하려면 정부는 공론화위의 객관적 활동부터 보장해야 한다. 이제라도 과학적·경제적 근거에 따라 에너지 수급과 전기요금 변화 등 탈원전의 장단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최종 결정은 국회를 거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이 혼란을 수습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