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친정에 아이 맡기고 출근하다 난 사고도 공무상 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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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직장과 반대 방향으로 멀리 떨어진 친정집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다 난 사고도 ‘통상적 출근길’ 사고로 인정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심홍걸 판사는 지방의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는 ‘워킹맘’ 조모(40)씨가 낸 소송(요양불승인 취소)에서 “공무원연금공단은 조씨에게 공무상 요양을 인정해 줘야 한다”고 판결했다고 23일 밝혔다.

직장 반대 방향 친정 근처 어린이집 #들렀다 사고 난 맞벌이 워킹맘 소송 #“애 맡기는 건 출근 필수 행위” 판결

맞벌이하는 조씨 부부는 아이들을 친정어머니 집에 맡기고 키우다 어머니가 다른 손자들을 돌봐줘야 하는 사정이 생기면서 어머니 집 근처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맡겼다. 조씨는 2년 넘게 자동차로 집→친정→회사→친정→집을 오가는 출퇴근을 계속해 왔다.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해 9월, 조씨는 평소처럼 두 아들을 어린이집에 맡기고 방향을 돌려 직장으로 출근하다 차가 빗길에 미끄러지며 중앙선을 넘었다. 반대 방향에서 오던 차와 부딪친 충격으로 조씨는 골반뼈 골절과 간 손상 등을 입었다.

조씨는 출근길 사고로 인정돼 공무상 요양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공무원연금공단 측은 “정상적인 출근 경로를 벗어난 교통사고는 출근 중의 사고로 볼 수 없다”며 요양 승인 신청을 거절했다.

심 판사는 “공무원인 조씨 부부는 모두 일정 시각까지 각자 직장에 출근할 의무가 있고, 영유아인 두 아들을 보호해 줄 사람이나 기관이 없으면 출퇴근해 일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이들을 보호해 줄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출퇴근에 있어 필수불가결한 행위다”고 판단했다. 이어 “친정어머니가 손자들이 태어났을 때부터 데리고 살며 키워 온 상황에서 집과 다소 거리가 있는 친정에 아들들을 맡기고 출근한 것은 보통의 맞벌이 직장인들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양육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심 판사는 또 왕복 거리 20㎞보다 더 먼 곳에서 출근하는 공무원이 출근길에 있는 어린이집에 자녀를 맡기고 출근하다 사고를 당한 경우는 통상적 출근으로 인정될 것이라는 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는 모성 보호와 남녀 고용평등을 실현하고 근로자의 일과 가정의 양립을 지원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해 “보호자인 친정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출근하다 발생한 사고는 통상적 경로로 출근하던 중 발생한 사고로 보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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